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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Sep 21. 2020

김치식 오픈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을 즐겨 한다. 어느 한 팀에 프로게이머가 있다던가, 게임을 포기하고 나가버렸다던가 하는 사정으로 게임의 승패가 일찍 결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 너무 불리해서 승리의 가망이 없게 되면, 유저들은 '오픈'을 선언하곤 한다. "우리가 졌으니, 얼른 게임을 끝내 달라" 라는 일종의 사이버 안락사 요청인 것이다. '오픈'을 선언한 유저는 더 이상 진군해오는 적들을 막지 않고 아군 기지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때워야 한다. 상대가 게임을, 의미없는 시간들을 끝내 주기를 기다린다. 상대편 역시 '꽁승개꿀'을 외치면서 얼른 게임을 끝내는 것에 몰두한다. 이런 식이다.



문제는 '오픈'을 선언한 유저들이 항상 납작 엎드려서 처분을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승리와 직결되는 건물을 철거하는 데 몰두한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적을 처치해 버리는 일이 거의 항상 벌어진다. '오픈' 선언을 믿고 얼른 게임을 끝내려던 상대는 짜증이 난다. 의미없는 게임이 길어지기도 할 뿐더러, '죽는' 건 언제나 기분나쁘니까. 이럴 때 통용되는 표현이 있다. 그리고 항상 등장한다. 



또 김치식 오픈이네



승산 있는 게임인데도 '오픈'을 외치는 팀원 때문에 짜증이 잔뜩 나 있던 상태이건, '꽁승개꿀'을 외치면서 적진으로 진군하던 상태이건, 나는 김치식 오픈이라는 단어가 거슬려서 도무지 게임을 더 하지 못하고 클라이언트를 종료한다. 


어떤 행위에 '김치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꽤나 큰 의미를 가진다. 그 수사를 사용하는 언중言衆들이 인식하는 한국인의 성향이 그 행위에 투사된다. 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길래, 항복을 가장한 배신행위에 '김치식'이라는 단어가 붙게 된 걸까?



'리그오브레전드' 플레이어들은 대다수가 10~20대 남성임에 비추어 볼 때, 칭기즈 칸과 풍신수길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패퇴하면서도 불의의 일격을 가하던 의병들의 모습이 모티브가 되었을 리는 만무해 보인다. 그냥 '좋지 않은 것', 내지 '배신하는 것',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붙이고 싶어 '김치식' 이라고 부른 것이 유행을 타게 된 것 같다. 뭐가 되었든, 김치식이라는 건 어느새 극히 부정적인 형용사가 되어 버린 것이 틀림없다.





삼시세끼 김치를 먹으면 슈퍼파워를 가지게 되고 코로나바이러스에도 면역력을 가지게 된다는 식의 편협한 국수주의를 싫어하지만, 일상적으로 여과 없이 드러나는 자국혐오는 그 뾰족한 마음들을 돌이킬 방법이 과연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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