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일을 하다 보면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하게 된다.
변호사는 의뢰인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에 함께한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과 변호사는 서로 무한 신뢰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그렇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믿지 못하면 의뢰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변호사에게 그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싸우러 나가는 변호사는 자신이 가지고 나가야 할 무기 중 일부만을 가지고 전장에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첫만남은 바로 상담이다. 의뢰인이 변호사를 어떻게 찾게 되었든(광고, 인터넷, 소개, 등등) 의뢰인과 변호사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 일 가능성이 99%다. 당신이 얼굴을 아는 변호사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쉽다. 변호사가 많다 많다 하지만, 당신이 직접 전화해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으니 부탁할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있는 변호사는 극히 드물다. 또한, 형사사건이나 이혼 사건의 경우, '아는 변호사'에게 부끄럽거나 껄끄러워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터넷 광고를 통해 선임하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의뢰인과 첫 대면에서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상담 테이블에 앉은 변호사란, 마치 소개팅에 나온 여성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 남학생 같은 처지인 것이다. 소개팅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알 테다. 그것이 얼마나 미치도록 어려운 일인지.
자 그렇다면, 변호사는 상담 테이블에서 어떻게 신뢰를 얻는가. 정론 즉 올바른 길은, 자신이 이 사건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해 보았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이 사건을 잘 수행할 수 있음을 보이는 것이겠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는 별로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 같다:
1) 대부분의 의뢰인들이, 자신의 사건을 유효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너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하거나, 너무 추상적으로만 이야기한다. 이런 경우에 변호사는 '무조건 이긴다'라고 이야기하거나,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많은 변호사는 '무조건 이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2) 개업변호사는, 자신이 한 번도 수행해 보지 않은 사건이더라도 '모른다, 다른 곳 가보셔라' 라고 할 동기가 없다. 이건 '한 건의 액수가 큰' 변호사업의 숙명이기도 하다. 쉬운 이해를 위해 의사와 비교를 해 본다. 로컬 병원(동네 병원)의 경우,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환자는 너무나 쉽게 '큰 병원 가보세요' '저희는 못해요' 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는 첫째, 의사는 환자 하나하나가 가져오는 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둘째, 의사는 대부분 장사가 잘 되니 가능하다(의사가 늘어나면 그렇지 않게 되어 과잉진료가 늘어난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변호사의 경우, 한 명의 변호사가 한 달에 평균 수임하는 사건 수가 1개 미만으로 떨어진 지 꽤 되었다. 그 말인즉슨, '한 놈만 걸려라' 라는 식으로 상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의사는 '전문분야'가 매우 뚜렷해서 자신이 모르는 분야는 정말 모르고, 진료하여서도 안된다. 그러나 변호사는 잘 모르는 분야라도, 대부분의 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법적 자격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돌아볼 시간이다.
'항상 내가 어디에 있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 나는 감사하게도 개업 직후부터 배를 곪지 않을 정도로는 사건을 수임할 수 있었어서, 위와 같은 고민을 별로 하지 않고 초기 구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변호사들이 너무 많다는 걸 느꼈다. 인스타, 유튜브, 쓰레드 등의 SNS에서 자극적으로 홍보하는 변호사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 개업 선배랍시고 찾아와 이런저런 고민을 이야기하는 후배 개업 변호사도 생기고.
이런 고민들이 입체화되다 보니, '나의 개업일기'라는 제목의 이 브런치를 쓰기가 괴로워졌었다. 개업 변호사라는 일이 누구에게는 지옥같은 일, 잊고 싶은 경험일 수도 있다는 생각들. 변호사로서 살아남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 작금의 세태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희생되는 건 정보불균형 속의 의뢰인들 뿐인데, 과연 나는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인가. 변호사라는 직군은 앞으로 10년 뒤에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런 고민들은 나 혼자 끙끙 앓고 친구들 만나 소주 한 잔 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할 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내 좌우명을 되새기며, 오늘도 두서없는 글 하나 '발행' 버튼을 누른다. 퇴고 따윈 없는 글이다.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