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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Dec 20. 2020

코로나 시대의 군법무관

군법무관 이야기(5)



사회의 여러 집단 중, 변화에 둔감하고 보수적인 것으로 손꼽으라면 군대, 학교, 법원을 보통 뽑는 듯 하다. 이 집단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또 어느 정도 보수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내가 머리가 좀더 좋거나 엉덩이가 아주 많이 무거워서 법관이 되었다면 요 세 집단을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번 생에는 틀린 것 같아 독자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그래도 1년 동안의 공군본부 생활은 군대라는 집단에 대해서 꽤나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값진 시기였다. 물론 내가 보고 느낀 군대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만큼이나 작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민간인 대부분이 생각하는 군부대처럼 소총을 든 초병이 정문을 지키는 외로운 군부대가 아니라, 육해공 3군의 지휘부가 모여 있는 본부에서의 생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밤하늘 가득 떠 있는 별이라던지, 영내에 뛰노는 고라니와 사진 한 방 박는다던지 하는 로망은 실현하지 못했다만, 군대라는 거대하고 보수적인 관료제 집단에서 어떻게 의사를 결정하는지를 어렴풋이 체감하게 되었다.




사실 보통의 경우 (군인스럽게 얘기하자면 평시) 법무관이 무슨 정책적인 의사결정에 관여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군법무관이 맡고 있는 역할은 비위행위를 저지른 군인들을 형사처벌/징계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심스러운 일들은 당연히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할 뿐더러, 진급이라는 지상 과제를 두고 경쟁하는 좁은 사회에서는 그 예민함이 가히 손을 댈라치면 오그라드는 미모사와 같다. 그래서 군법무관들은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고, 그에 비례해서 군대 전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살짝 배제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행운인지 불운인지 내가 공군본부에서 근무한 2019. 8. ~ 2020. 7. 은 전시상황이었다! 본부 지역은 전투부대가 아니기 때문에 각군 장병들은 전투복이 아니라 약복(근무복)을 입는다. 그런데 코로나가 맹위를 더해가던 어느 날 참모총장 지침으로 하달되는 문자 한 통으로, 전체 장병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일사불란한 마음을 합해 전투복과 전투화를 입게 되었다. 전투복에 무슨 바이러스 몰살 기능이 있냐는 둥 바이러스도 때려잡는 해병대냐는 둥 동료 법무관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면서도, 한창 살이 오른 몸뚱이를 가려 주는 데는 또 펑퍼짐한 전투복만한 것이 없어 심신이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를 대처하는 군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모습과,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지는 않지만

의무복무이기에 군으로부터 떠나 준다면 바로 철창행인

나약한 중위따리 법무관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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