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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Dec 31. 2020

보이는 두려움, 보이지 않는 두려움

'모순'을 키워드로 읽은 <스위트홈>

간만에 마음에 드는 제목.


<킹덤>을 잇는 한국형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대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스위트홈> 시청 버튼을 누르지 않고 배길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스위트홈은 전혀 스위트하지 않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다 쓰러져 가는 '스위트홈' 건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시작부터 두루뭉술한 중의성과 모순을 가진다. 합격점인 것이다. 문학을 가까이하는 사람 치고 모순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없다. 그건 문학 그 자체니까. 자로 잰듯 떨어지지 않는, 칼로 물을 베는 그런 두루뭉술함이야말로 현실을 살아갈 맛 나게 하고 문학을 맛깔나게 하는 조미료다. 스위트홈은 폰트부터 '대놓고' 전혀 스위트하지 않은 내용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면서, 모순을 극대화하고 21세기 성공의 필수 조건인 '어그로'에 성공한다. 공상물의 포문을 열기에는 더없이 완벽하다.



전혀 스위트하지 않은 폰트와 사진. 여기서부터 모순은 시작된다.




공상, 그러나 과대포장된 현실일 뿐?


<스위트홈>의 복도에는 괴물들이 어슬렁댄다. 고압 전기가 흐르는 식칼 작살을 들고 아이들을 구출하러 나가든, 슈퍼에 담배 한 갑을 사러 나가든, 그나마 안전한 방에서 나가는 사람은 콩알만한 유리조각에 눈을 박고 좌우를 살핀 다음, 휴대전화를 통화 상태로 해서 괴물을 탐지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나 아닌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누가 다음 괴물이 될지 모르니까. 이건 현실이 아니다. 당연히. 이게 현실이라면 차라리 일찌감치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게 속편할 듯 성싶다.



그런데 2020년을 떠나보내며, 2020년의 세계와 <스위트홈>의 세계가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자문하면, 대략 말문이 막힌다. 첨단 과학도 실체를 밝히지 못한 전염병, 철저한 정보 부족,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도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시청자들은 잔인한 장면에 눈을 가리고, 불타는 서울의 모습에 가슴을 졸이다가도, 죽지 않는 괴물들에 총알을 박아 넣는 모습에 시원해한다. 설령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바이러스에 죽창 한 방, 총알 한 방 박아 넣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스위트홈>이 전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것은 바로 본질적으로 우리 세계와 닮아 있는 이야기를, 뻔하거나 촌스럽지 않도록 비현실적이고 멋진 괴물을 데려온 데 있다. 괴물들은 그 뚜렷하게 혐오스러운 마스크를 이용해, 굉장히 모순적이게도 '은밀하게', 그러나 효율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표상한다. 세상에 없던 흉측함과 세상에 없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아주 멋지고 저주스러운 듀엣이다. 누가 그들을 쉽게 연관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과 싸워야 할 지 알 수도 없는 채로 싸워온 세계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위트홈>의 생존자들을 응원하며 같이 싸울 형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연대가 시작된다.






보이는 두려움과 보이지 않는 두려움


뮤지컬 <레베카>는 끝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레베카'라는 존재를 통해서 극한의 두려움을 연극화했다. 아무리 끔찍한 형상이라도, 보이지 않는 것보다 두려울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스위트홈> 작가 역시 알고 있었을까. <스위트홈>은 천리 밖에서도 보일 법한 괴물들과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우리를 슬그머니 위로한다. 모순적이지만 그럴싸하고, 뜻밖이라 효과적이다.


어쩌면 진정 위로받아야 하는 것은 총이라도 맘껏 쏴 보고, 5명이든 10명이든 모여 비명이라도 한 번 맘껏 지를 수 있는 스위트홈 세계에서의 사람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끝모를 분투를 벌이고 있는 2020년의 우리가 아닐까?  <스위트홈>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라는 최악의 상대를 흉측한 괴물로 만들어 링 위로 끌어낸다. 보이지 않던 것이, 마침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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