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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13. 2020

글쓰기의 고통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원죄

글을 쓰는 건 고통스럽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모든 대문호들이 동의한 사실이다. 그러니 나 같은 신참 작가가 은근슬쩍 끼어들어서 고통스러워해도 눈살을 찌푸릴 일은 아닌 거다. 대문호들의 어깨 위에서 얄랑궂은 한 마디를 더 얹어 놔도 크게 노하시지도 않을 테다.

 

#누가?

모두가 글쓰기의 고통을 겪는가? 아니다. 출근하기 싫다, 일하기 싫다, 애 보기 싫다 ... 이런 말들은 방방곡곡에서 들려온다. 글 쓰기 싫다 라는 비명은 좀체 접하기 어렵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만이 그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만 한다'는 것은, '쓸 글이 있다'와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개학을 앞두고 지나간 날씨를 찾아보며 일기를 벼락치기하는 초등학생, 기말 대체 레포트를 내야하는 대학생, 오늘도 또 무슨무슨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 직장인들은 '쓸 글'이 있는 사람들이다. '쓸 글'이 있으니, 그 글을 쓰고 나면 더 이상 괴롭지 않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은 글을 오래 쓰지 않으면 오바 조금 보태서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솔직히, 치명적이지는 않다. 오랜 경험자다.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수 있긴 하다. 아무도 모르니까.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렇지만 먼지묻은 다이어리를 집어서 텅 빈 두달어치를 촤르륵 넘겨 버릴 때, 인사말과 다짐, 그리고 고심 끝에 고른 탬플릿만 남아 있는 블로그를 폐쇄할 때,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나 의심스러울 때,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결국 다시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써야만 하는 사람들은. 글쓰기의 고통을 다시 원죄로 받아들인다.


난 아무것도 쓰지 않고 그냥 살아왔던 시간들도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 박완서


#쓰기 전

쓸 것이 없어서 고통스럽다. 글 쓰면 좋은 걸 누가 모르나. 핸드폰 뒤집어 놓고, 각 잡고 쓰려니 뭔가 대단한 걸 써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뭘 써야될지? 흰 바탕에 커서만 깜빡인다. 거침없이 누르던 키보드 키캡들이 시한폭탄 스위치가 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지금 글을 쓰려고 하는거야? 글이 밥먹여주나? 넷플릭스나 볼까?


제대로 쓰지 말고 무조건 써라. - 제임스 서버


#쓰는 중

쓰는 중에는 괜찮다. 행복하다. 물에 오래 있다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행복하게 써내려간다. 살 것 같다. 가끔씩 어 이거 아닌 것 같은데, 갸웃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글이 형편없고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일 때도 그냥 계속해서 써내려가야 하네. 소설을 다루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뿐일세.
빌어먹을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거지.  
- 어니스트 헤밍웨이


#쓰고 나서

쓰고 나니 또 이거 참 아주 미칠 지경이다. 일단 마무리가 어렵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이걸 올려 말아. 읽는 사람들의 비웃음이 여기까지 보이는 것 같다. 나의 해결책은 딱 하나다. 눈을 질끈 감고 올린다. 올리고 나니 자잘한 실수들이 보인다. 이 표현은 이렇게 쓰는 게 더 멋질텐데. 누가 볼세라 수정한다. 꼭 수정 전에 좋아요 누르는 눈치없는 놈들도 있다. 자, 이제 정글 한복판에서 발가벗겨진 심정이 옥죄어 온다. 이제 그만 잊어버려야지. 하면서도 고통스럽다. 아른아른거린다.


짧은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긴 글을 올립니다.
- 마크 트웨인


글을 쓰는 건 정말 고통스럽다. 이 글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두려운 마음이 불쑥 든다. 윽. 마음 속에서 누군가 속삭인다. '야 그냥 다 지워! 뭐 이런 걸 올리려고 해. 미쳤어?' 꾸욱 참는다. 오늘도, 발행 버튼을 누른다. 꾹.




p.s. 본문 중 글귀들은 '주관의 쓸모' 님의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발췌했습니다. (아래 주소)

https://everyday-matters.tistory.com/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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