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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18. 2020

운전이 즐거운 이유

짙은 썬팅 너머의 공동체 - 조던 피터슨

운전은 위험하고 책임이 따른다.



법률적으로 자동차 운전은 '업무'에 해당한다. 그래서 자동차로 사람을 치어 다치게 하면 '교통사고처리특별법상 업무상과실치상죄' 라는 길고 ㅎㄷㄷ한 죄명에 걸려들게 된다. 운전대를 잡고 엑셀레이터에 발을 올리는 순간, 우리는 상상도 못할 책임과 위험을 짊어지게 된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들은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것을 성인식과 동일하게 취급한다. 행여 쏘카라도 빌려서 도로에 처음 나가는 날은 SNS에 대문짝만하게 자랑해도 전혀 눈꼴시린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왜 자신의 목을 조르면서 행복하다고 애써 생각하는 것일까? 운전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길래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운전을 처음 시작할 때 설레는 걸까?




조던 피터슨의 인간관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다 보수논객이자 유튜브 클립으로 유명한 조던 피터슨의 인간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고통받는 존재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몇 안 되는 동아줄은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는 신념 체계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는 모종의 신념체계를 공유한다고 전제하고 행동한다. 그래야만 불완전하고 깨지기 쉬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 행여 이런 신념 체계에 금이 갈 때 인간은 갓난아기처럼 위태로워진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던 피터슨의 인간관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운전이다. 한 번이라도 차를 몰고 도로에 나가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짙은 썬팅 너머의 익명의 운전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나와 같은 신념 체계롤 공유하지 않는다면 도로는 바로 생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운전면허를 따려 거금을 들이고, 오늘도 도로에 나서는 건 운전자들의 신념 체계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운전의 즐거움


운전의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걸어서 이동하는 인간을 생각해 보자. 물 위에서 떠다니는 물방개처럼 완전히 자유롭다. 어떤 공동체에도 속해 있지 않다.  시간 약속이 있지 않는 이상, 이 사람이 갈 지자로 걷든 마라톤을 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조던 피터슨 식으로 보면 그는 아무 신념체계에도 속하지 않았고, 자유로운 만큼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를 회의하게 되고 결국 불행하다.


이제 운전하려고 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초보일수록 좋다. 아파트 단지(단지 내는 대부분 도로가 아니다)에서 깜빡이를 켜고 도로에 진입하는 순간 그는 시야에 보이는 모든 운전자들의 공동체에 포섭된다. 모든 운전자들은 그를 의식하고, 그는 다른 운전자들을 의식한다. 그러나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으로 모두 의식하는 편집증 환자라면 운전은 불가능하다. 그는 '그냥' 운전한다. 신념체계에 자신을 맡긴다. 기적적으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그를 포함한 모든 운전자들이 신념 체계를 수호한 것이다.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고, 시동을 끄면서 그는 큰 한숨을 내쉰다. 큰 산을 하나 넘은 것 같은 기분, 관혼상제 중 하나라도 해치운 듯한 기분은 바로 드디어 운전자 공동체에 속해서 신념체계를 수호하는 데 일조하였다는 뿌듯함일 것이다. 


요새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을 읽고 있다. 조던 피터슨은 바로 이 뿌듯함, 공동체의 신념체계를 확인하고 유지할 때 느끼는 뿌듯함을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 선언한다. 다소 과격한 주장으로 의문부호가 따르곤 하는 그이지만, 운전이라는 엄청나게 사회적인 행위를 분석하는 데는 유용한 틀인 듯 싶어서 끌어와 보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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