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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20. 2020

까미 이야기

집에 개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까미. 그렇게 쓰여진 목걸이를 항시 달고 있다. 이름에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듯이 (아마 전국의 까만 강아지들 중 절반은 까미일 거다.) 머리부터 꼬리끝까지 온통 까만색이다. 흰색이라고는 눈동자를 굴릴 때 보이는 흰자 뿐인 아주 귀여운 친구다. 견종은 푸들. 토이푸들도 아니고 큰 푸들도 아니고 공원에 가면 가장 자주 보이는 흔한 사이즈의 강아지다.


특별한 개는 아니다. 줄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말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담요를 덮어 놓으면 빠져나올 줄 모르고 숨을 죽인다. 그래도 아주 천치는 아니다. 앉아, 손 정도의 기본과정은 곧잘 해낸다.


까미가 우리 가족과 함께 산 지는 햇수로 5년 정도 다. 4살 터울의 동생이 성인이 되자, 적적해진 엄마의 주도로 키우기 시작했다. 까미는 물론 그 자체로 잔망스러운 행복을 안겨 주지만, 나는 종종 까미를 대하는 엄마에게 더 눈길이 간다. 조금은 무뚝뚝하시고 맺고 끊음이 확실하신 편이지만, 까미에게만큼은 한없이 부드러운 분이 되신다.


서른이 가까운 수염 거뭇한 아들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살가운 애정표현들이, 어쩌면 그건 내 나이 탓이 아니라 내가 무뚝뚝한 불효자라서, 내가 아니라 까미에게 향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할 때면 철렁하다. 제까짓 강아지도 저런 사랑을 주시는데, 까미보다 내가 조그마했을 때에는 대체 나는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을런지 생각하면 그 사랑을 어찌 되돌려 드려야 하는지, 참담한 마음까지 든다. 바깥으로 싸돌아다니기 바쁜 내가 해야 할 효도를, 우리 강아지가 대신 해 주는 것 같아 괜히 뒷통수가 가렵기도 하다.


다른 어떤 개와도 바꿀 수 없는 까미와, 당연히 바꿀 수 없는 부모님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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