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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24. 2020

오늘 아침의 출근길

보라매역 부근의 군인아파트에서 산다. 출근은 명동으로 한다. 집에서 사무실로 가려면 지하철 7호선과 4호선을 타거나, 505번 버스를  타면 된다. 7호선 보라매역은 집에서도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고, 역사가 너무 깊게 설계되어 있어 꺼려진다. 결국 집 바로 앞에서 탈 수 있고 회사까지 바로 보내 주는 505번 버스를 타고 통근하게 된다. 505번 버스는 보라매공원에서 나를 삼키고, 대방 - 여의도 - 용산 - 서울역을 거쳐 회현에서 으웩,뱉어낸다. 



7시 50분 쯤에 집 앞 정거장에 오는 놈을 타야 한다. 그걸 놓치면, 505번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긴 편이라 낭패다. 자리는 항상 모두 차 있고, 10명 정도가 서 있다. 여의도-서울대의 경전철 공사 때문인지, 여의도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모르겠지만 보라매-대방-여의도를 거치는 길은 아침마다 붕괴된 학급 같다. 한강다리도 못 밟아보고 버스가 서 있을 때면 아, 오늘은 이거 늦나... 싶어 안달이 난다. 출근한 지 1달밖에 되지 않아 505번 에 대한 믿음이 완벽히 들어서 있지는 않음을 오늘 고백한다.



하지만 한강만 건너면, 거짓말처럼 차가 없다. 여의도에서 승객이 거의 내리기 때문에, 여의도를 지나면 버스에는 자리가 항상 나게 되어 있다는 걸 귀납적으로 안다. 눈이 바삐 움직인다. 운이 없어 서 있었다면 얼른 빈 자리를 차지한다. 2인석에 앉아 있었다면, 틈틈히 보아 놓은 1인석으로 옮긴다. 전자책을 꺼내서 책을 읽는다. 서 있을 때 책을 보기는 어려워 보통 여의도 전까지는 휴대폰을 들여다 보기 때문에, 독서 시간이 별로 없다. 간밤에 타이거즈가 이겼다면 야구 하이라이트를, 아니라면 현실을 외면하고 유튜브를 본다. 



버스는 씽씽 달려서 순식간에 회현역 정류장에 선다. 나는 읽던 전자책을 집어 넣고 내린다. 나와 함께 내리는 사람은 적어도 서넛은 된다. 코로나 시대 이전의 명동을 본 적은 없어 코로나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거리는 한산하다. 드문드문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들이 보인다. 걷다 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팔아 주는, 가난한 군인에게 아주 고마운 카페가 있다. 노상에 펼쳐 놓은 테이블에서는 아침 수다를 즐기는 회사원들이 항상 있다. 웃고 떠드는 소리는 항상 기분을 좋게 한다. 오늘 아침 테이블에는 세상에, 자기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다음, 액정 위에 빵을 올려 놓고 맛있게 수다를 떠시는 분이 있었다. 분명 와이셔츠를 들춰 보면 배보다큰 배꼽이 있겠지. 아이고 배꼽이야. 이거 참 재미있네, 오늘 브런치에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아저씨.



달그락대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고 사무실에 도착한다. 오늘도, 첫 번째 임무는 완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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