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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27. 2020

행복하려면, 불행하지 않으면 된다

나의 개똥철학 행복론

행복하려면, 불행하지 않으면 된다.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닌가. 행복의 반의어는 불행이니까,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물론 누가 봐도 진리인 문장을 제목으로 걸어 놓은 것은 더 많은 마우스 커서와 집게손가락을 의식한 결과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해서 '국이 짜면 물을 더 넣으면 된다'는 리빙포인트 수준의 문장은 아니다. 


행복을 정의하는 건 어렵다. 모든 추상 개념어가 그렇다. 행복이 뭘까, 하고 인상을 찌푸리고 고민해 보아도 뚜렷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라던지 텍스트들은 없다. 그냥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분만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 불행을 정의해 보려고 시도해 보자. 불행은 더 뚜렷하다. 불행은 좀 더 뚜렷한 이미지를 가진다.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생명을 위협하는 리스크를 회피하도록 세뇌되어 왔기 때문에, 부정적인 개념들은 조금 더 뚜렷하게 다가오지 않나 싶다.





사고실험과 내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행복하려면, 불행의 요소들이 없으면 된다는 것이다. 행복한 것, 그것 자체는 별로 행복해지는 것과 별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들을 직시하고,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이 생각은 나나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여러 가지 모습으로 광고되고 있다. 돈, 명예, 외모 등 여러 가지 외형적인 행복의 요소들은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명제는,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 고리타분할 정도로 암기되고 있다. 제 아무리 내면의 행복이 가득한 사람이라도, 갑자기 큰 병을 발견하거나, 아끼는 사람이 세상을 등지면 그 순간 세상은 암흑에 휩싸인 것처럼 보인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불행을 제거해야 한다면, 과연 어떻게 불행을 제거할 것인가? 여기서 맞닥뜨리는 문제는, 대부분의 불행들은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곳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질병, 이별, 사고, 사업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애를 쓰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불행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다시 나와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어디선가 찾아온 불행한 느낌에 삶의 의욕이 없을 때면, 그건 대부분 위에 등장한 거물급 불행 때문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자. 보통 불행의 씨앗은 조그마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냥 어디선가 들려온 소식에 질투를 느꼈거나,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점심을 과식했거나, 사무실이 약간 덥다거나. 이런 것들은 대부분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들이다. 왜 불행한 느낌이 드는지 잠깐 집중해서 생각해 보고, 해결하면 되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한 번 불행한 느낌에 휩싸이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 나는 행복하지 않지? 


행복하고 싶은가? 불행하지 말라. 불행하고 싶지 않다면, 갑자기 찾아오는 작은 불행에 재빠르게 대응해서 더 이상 그것이 나를 집어삼키게 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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