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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Aug 31. 2020

깔아죽이는 아파트

오늘 아침도 나는 원효대교를 건넜다. 사실 원효대교인지 한강대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굳이 505번 버스의 노선을 검색해서 어떤 다리를 건너는지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결벽증은 글을 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완벽은 낭만의 반의어니까. 한강대교든 원효대교든 어떠랴. 모로 가도 한강만 건너면 되지. 




여의도에서 용산 방향으로 원효대교를 건너다 보면, 건너편 강변에는 지금 당장 쓰러져 내 눈앞이 먼지로 휘감긴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본래 흰색이었을 외벽은 유서깊은 양반집의 호적마냥 누랬고, 보통 101, 105 따위의 동 이름을 쓰는 옆면에는 뜬금없는 한국화가 그려져 있다. 가장 느낌있는 것은 한국화 위에 걸려 있는 대형 걸개이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는 않는다만, "50년된 아파트에 깔려죽겠다! 서울특별시는 재개발계획 이행하라!" 라는 붉은 외침이다. 




무슨 이야기가 있을지 상상은 간다. 아파트 재개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서울에서 개인과 가족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생명을 걸 만한 일이다. 그러나 스쳐가는 버스에서 나는 왠지 모를 거부감과 비애감에 시선을 돌렸다. 장마로 넓고 깊어져 중립적인 한강물만 쳐다보았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와, 쓰러져가는 아파트에 깔려죽겠다는 호소인지 엄포인지를 붙여놓고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은 어떤 관계일까. 사람과 집은 그 자체로 이야기일진대, 이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살고 있을까. 혹시 아직 아무도 "깔아죽이지" 않은, 눈치없게 튼튼한 자신의 보금자리를 원망하면서 출근길에 오르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어느새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아무에다 대고 쉬이 얘기할 수 없는 것임에, 이런 세상이 이미 왔음에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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