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에 소속되어 있는 변호사는 자신의 이름으로 사건을 수임할 수 없기 때문에, 법인과 무관하게 내 지인 사건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변호사 000 으로 사건을 진행할 수 없고, 법무법인 00 명의로 진행하여야 한다. 당연히 내 계좌로 수임료를 직접 받을 수도 없다.
대부분의 서초동 법무법인들은 소속 변호사들에게 '개인사건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그 말인즉슨 손님을 자기 힘으로 모셔 오면, 그 돈 중 일부를 떼어 준다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사무실은 서초동 평균보다 한참 높은 수준의 개인사건 인센티브를 약속해 주셨고, 개업을 염두에 두고 있던 내게는 우리 사무실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였다.
절친한 대학 동기의 소개로, 오늘 예상보다 빠르게 인생 첫 개인 사건을 맡게 되었다.
계약 과정에서 뭐 대단한 것은 없었다. 이미 의뢰인님과 수차례 통화를 통해서 일을 맡게 될 것임은 알고 있었고, 오늘은 '얼굴 보고 도장만 찍는' 수준의 미팅이었다.
그저 인생 살아오신 이야기,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전화로 다 들은 내용이었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열심히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금방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거 참 나쁜놈이군요') 안타까워하기도 하다 보니 ('아이고.. 그때 저를 찾아오셨어야지..웃음') 한시간이 훌쩍 넘었고, 주섬주섬, 우물쭈물, 미리 출력해 놓은 수임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의뢰인과 변호사의 돈문제 관계에 관하여서는 익히 들은 바 많고, 실제로 우리 법인의 성공보수 미지급 사건 소송도 몇 개 수행하는 입장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어색한 순간을 최소화하고자 미리 통화로 맞춰드릴 수 있는 수임료 수준을 말씀드렸고, 순간 목소리가 급격히 흐려졌다고 생각하였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그대로 말씀드렸다. 다행히 의뢰인분은 너무 선선하게 수락하셨고, 성공보수 약정까지 흔쾌하게 동의하여 주셨다. 충성충성..! (변호사비용은 왠만하면 깎지 않는 것이 좋다. 변호사들은 대개 기분파다. 나도 그렇다.)
도장을 찍고(도장을 안 가져오셔서 서명으로 대체한건 안비밀) 닫히는 엘리베이터에 고개를 숙여 배웅한 후, 야근을 대비하여 맥도날드로 향했다. 문득 올려다본 서초동의 밤하늘은 오늘따라 장밋빛인 듯 했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시월의 어느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