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동시에 몇 사건을 수행할까?

변호사는 머리 세개 달린 케르베로스?

by 황변

여러분은 보통 한 번에 몇 가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나요? 저는 회사에 다녀본 적은 없어서 회사원의 삶은 잘 모르지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 자체로 굉장한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변호사는 보통 몇 개 정도의 사건을 동시에 처리할까요? 한 번 상상해 보시는 것도 재밌을 듯 합니다.


제가 현재 '들고 있는'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확정된 사건을 빼면 지금 돌아가고 있는 사건은 28개네요. 그런데 여기 안 들어가 있는 소송도 몇 개 있으니, 30개라고 칩시다. 참고로 '들고 있다'라는 개념은, 이 사건에 책임을 진다, 핸들링 한다 입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에 제출할 서면의 초안을 작성하고, 재판에 출석하고, 의뢰인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증거를 골라내고, 법원이 판결을 해 주면 돈을 받아내는 작업까지. 이를테면 '거의 다'이지요. 저는 아직 월급을 받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책임은 대표 변호사가 집니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잘 알고 있는 변호사는 담당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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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랍게도 이게 다는 아닙니다! 전자소송 홈페이지에는 기본적으로 '민사소송'만 표출됩니다. '형사사건'은 보이지 않죠. 저는 형사사건 4~5개 정도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 전자소송 홈페이지에서는 민사 분야에 속하는 각종 '신청사건'은 표출되지 않습니다. 신청사건이라 함은 '가압류', '가처분', '소송비용액확정' 등등 재판보다는 보통 쉬운 절차를 이른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제가 지금 신경써야 하는 사건은 총 40개가 좀 안 되는 정도라고 보면 얼추 될 듯 합니다. 저 개인적으론 40개 정도의 사건이라면 제 몸과 마음을 지켜나가면서도, 나름 한 사건 한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되는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 변호사분들 역시 40개 정도의 사건을 들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은 듯 해요.




그런데 무서운 것은, 아직도, 동시에 100개 남짓의 사건을 동시에 '돌리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말았다는 변호사님들의 이야기가 전래동화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떠돕니다. 말 그대로 공장식으로 '돌리는' 것이지요. 보통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사건을 수임하는 대표는 30개를 배당하든 100개를 배당하든 배당만 하면 끝이지 자기가 손끝 하나 놀리지 않습니다. 기계를 돌리듯이 변호사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보통의 대표변호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담당 변호사는 해당 사건을 제대로 챙길 수가 없습니다. 제 때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서면을 낼 수가 없습니다. 처음엔 고생하는구나, 하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던 재판부의 눈초리는 점점 따가워집니다. 의뢰인들은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변호사가 일처리가 늦으니 자꾸만 독촉하게 됩니다.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목소리 큰 의뢰인 사건을 더 챙길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사건 처리가 지연된다고 신건 배당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변호사에게 그 정도 배려가 있는 사무실이라면 이 지경까지 가지 않습니다. 변호사가 들고 있는 사건은 점점 더 많아집니다. 마침내 이를 버티지 못한 변호사는 때려치고 도망을 갑니다. 유일한 해방은 그것뿐이니까요. 그럼 그 빈 자리는 순진무구한 수습 변호사로 채우는 것이고, 그 수습변호사가 하얗게 질려서 도망칠 때까지 영원히 그 쳇바퀴는 돌아가게 됩니다. 변호사만 바뀌고, 사건은 끝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변호사든 의뢰인이든 이러한 이상한 사무실을 한눈에 알아보고 거르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새내기 변호사들의 입장에서는 최근에 정보를 공유하는 창구가 많아져서 꽤나 용이하게 이런 회사들에의 지원을 삼가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의뢰인들이지요. 비극은 겉보기에는 아주 멀쩡해 보이고 규모가 큰 사무실도, 심지어 사건이 한창 진행 중인 경우에도 의뢰인은 속사정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이상한 사무실들의 특징을 알려드릴게요.

1) 승소를 확신한다: 승소를 확신할 수 있는 변호사는 없습니다. 승소를 확신한다는 것은 바꾸어 이야기하면, 내가 그 사건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담당 변호사는 따로 있으니, 패소의 책임은 내가 지지 않는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수행하는 사건은 절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짓은 요리사가 장갑을 끼기도 전에 요리가 입맛에 맞을 거라고 장담하는 것과 같습니다.


2) 수임료가 터무니없이 싸다: 수임료가 싸면 좋은 것 아니냐구요? 재판을 수행하는 일은 슬프게도 굉장히 노동집약적인 일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간단히 끝날 일도 한없이 복잡해질 때가 엄청 많아요. 그러다 보면 아.... 이거 이 돈 받고 할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정말 자주 듭니다. 이걸 알았으면 변호사 안 했을텐데 그러므로 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착수금을 제시하는 변호사는 자기가 직접 사건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파격세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이 서면 쓰고 재판하면, 그 돈 받곤 못합니다. 여기서, 그렇게 착수금을 저렴하게 받으면, 담당 변호사의 월급을 주기 위해선 사건을 많이 배당해 드려야(!) 한다는 기가막힌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예의 그 비극 내지 전설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변호사들은 꽤 고도의 멀티태스킹을 요구받습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입니다.

아무리 RAM인지 CPU인지의 성능이 좋아도 연산작업에는 한계가 있듯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성실한 변호사라도 멀티태스킹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감정노동까지 해야 하는 직업이니 더욱 그런 듯 합니다. 변호사와 의뢰인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법조 생태계가 마련되면 하는 마음에 글이 길어졌네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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