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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Mar 02. 2023

3년 만에 공부를 했다.

오늘은 실로 오랜만에 공부를 했다. 어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한 것은 엄격히 따지면 3년만인듯 하다. 변호사시험 합격 이후에는 의식적으로 좁은 의미의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공부를 항상 잘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자존감이 너무 강해서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머리가 다 굵어지고 난 다음에는 공부가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난 고등학생 때까지는 미친듯한 수재였고 그래서 수능을 단 2개만 틀렸다. 그러나 그걸 활용하지도 못하고 수시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했다(어차피 정시였어도 그리 갔을 거다).


그러나 그 이후로부터는 공부로 인정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 지인들 중 혹자는 나를 두고 자기가 서울대 동문 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꼽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좁은 의미의 공부와는 관련이 없다. 




오늘 공부한 것은 토요일에 '가맹거래사' 시험을 등록해 놨기 때문이다. 가맹거래사는 흔히들 아는 '프랜차이즈' 산업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1차 시험은 경영학, 민법, 경제법이다. 나는 변호사니까 민법은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경제법은 가맹사업법 관련 사건을 많이 하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 이런 생각에 토요일이 시험인데 목요일 저녁부터 사무실에 앉아 컵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책을 폈다. 


'한권으로 끝내는 가맹거래사'라는 책이 있는데 비싸서 사기 싫다고 노래를 부르다, 아는 변호사님이 주신다고 해서 냉큼 받아 왔다. 




오랜만에 공부를 하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뭐 제대로 각을 잡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니, 대단한 감정이 일었던 것은 아니다. 꼴랑 7시부터 10시까지, 중간에 LCK 젠지 대 KT 전 3세트도 중간중간 보고, 카톡도 하고, 서핑도 했다. 나는 참 이렇게 10대와 20대를 다 바쳐 공부했구나. 왜 그랬을까. 변호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였구나. 그런데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나서도, 조금 더 전문성을 쌓아 보려고, 누군가 내 이름 석자 옆에 변호사뿐 아니라 가맹거래사 라고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또 공부를 하게 되는구나.


시간을 돌려 10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다시 공부를 할 거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공부이고, 나는 내 직업, 변호사라는 직업을 사랑하니까.


더 열심히 공부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얻기' 'get'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을 난 옛날부터 참 공허하다 생각했다. 그 무언가를 얻고 나면, 생각보다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만 깨달을 뿐인 것 같다. 그건 머리가 굵어지고, 내가 이전과 다른 어떤 성취를 이룰 때면 반복되는 깨달음이다. 


오히려, 내가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통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의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대상을 성취하고 싶어서 4당5락의 자세로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든,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을 주고 사 버리든 하여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걸 성취하고 나면, 그건 내 그릇에 넘치는 보상이어서 내 그릇이 견디질 못한다.


그런 경우 자기를 철저하게 되돌아보고, 내 그릇에 맞는 더 작은 성취에도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자신을 돌아보는 법을 모른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것은 끝까지 버텨서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나는, 하루하루가 버거운데 대체 어떻게 행복하려고 저러는걸까라고 주제넘게 생각한다. 미래의 나를 어떤 면목으로 보려고, 오늘의 나를 이토록 괴롭히고 있는 걸까. 라고도 생각해 본다. 


달랑 3시간 공부했다고 이렇게 주절주절 글이 잘 나오는 것을 보니, 학생때 페이스북을 왜 그렇게 많이 했는지 알 것만 같다. ㅎㅎ 그럼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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