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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Feb 21. 2023

나는 시작했다. 당신과는 다르게.

유튜브 영상 편집 입문기

유튜브라는 걸 해 보자 싶었다. 사실 그런 생각 안 해본 사람 어디 있나. 손 들어보자. 에라 유튜브나 해볼까? 라는 생각 한 켠에 품지 않은 사람, 돌을 던져라.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유튜브로 fire하는 꿈을 꾼다. 언제든 자결할 태세로 날뜩이는 칼을 품고 있는 사무라이처럼.


실행력 하나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나다. 저번 주말에 filmora 라는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평소 골프든 뭐든 장비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터라 108,000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투자했다. 



광고 아님. '프리미어 프로'는 갖고 있는데, 너무 어려워서 쓸 수가 없더라. filmora는 쉬웠다.


주로 다루는 것은 골프. 2년간 열심히 산으로 들로 다니며 모아 놓은 영상들이 든든했고, 매주 몇 회씩 연습을 다니면서 찍을 영상들을 간추리면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영상을 찍고 편집까지 하려면 재밌어야 하는데, 도저히 변호사 일은 내가 흥이 나서 영상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채널 만드는 것은 쉽다. 사실 뭘 할 필요도 없이 내 유튜브 계정이 그대로 채널이니. 당분간은 편집이 필요없는 shorts만 간간히 올렸다. shorts는 참 위력이 대단한 듯 하다.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아무 편집도 하지 않은 2초짜리 스윙 영상은 조회수가 3천 정도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툭툭 올려도 저 정도 조회수가 나온다니. 가끔 달리는 댓글은 신기했다. 브런치에 달아주시는 댓글이 등산로에서 인사하는 아저씨들 같다면, 유튜브에 달리는 댓글은 사파리에서 만난 사자 같달까. 




오늘은 간만에 짬이 나서 퇴근 후에 2분 30초 짜리 연습영상에 자막을 붙여 보기로 했다. 혼자 연습하는 영상이니 대사 따위는 없었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연습을 하는지를 담았다. 영상편집하는 일 자체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이 읽어 주겠지, 라는 생각은 잘 안 하게 된다. 오히려 그게 장점일 경우도 많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글쓰기는 문득 무서워질 때가 많다. 그런데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가슴이 뻑적지근한 것이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상이라서일까, 무서움도 한결 덜했다. 이론상 전세계인이 볼 수도 있는 건데도.


150m 에서 백발백중 핀빨로 붙이는 법 - YouTube


2분 30초짜리 영상에 자막을 붙이고, 옹색한 특수효과까지 넣느라 낑낑. 1시간 남짓 걸렸다. 완성본을 몇 번이고 다시 틀어 보면서 혼자서 낄낄댔다. 자식을 낳아서 학예회를 가면 이런 기분일까. 미친듯이 엉성한데 너무 재미있다. 내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나한텐 재밌다. 내 딴엔 정말 위트있게 만든다고 했는데, 이걸 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웃음이 실실 난다. 




혼자 들여다보다가 싫증이 좀 나자,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몇몇 스스럼없는 카톡방에 영상 주소를 공유했다. 아뿔싸, 썸네일의 회심의 punch line이 가려져서 안 보이는 게 아닌가. 

아하. 썸네일을 만들 때에는 자막을 좀 더 위쪽에 놔야 한다.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을 하자, 자막이 짤려서 짜증이 나기는커녕 비밀 암구호를 공유하는 일루미나티라도 된듯 가슴이 벅찼다. 


유튜브를 해 봐야겠다 라고 생각한 1천만 명 중에, 실제로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하나라도 올려 본 사람은 100만 명 정도 될까? 그리고 그 100만 명 중, 영상편집 프로그램으로 자막을 달아서 영상을 올려 본 사람은 1만 명 정도 되지 않을까 한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말리지 않는데,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유튜브 얘기만 하는데, 사람들은 유튜브를 시작하지 못한다. 나는 오늘 그 1000분의 1을 뚫고, 가장 악질적인 방해꾼인 '나'를 이겨냈다. 나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이 새로운 도전이 오늘로 끝날지, 아니면 100만 유튜버로의 첫걸음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거다. 나는 당신과는 다르게, 시작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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