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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Jun 02. 2023

권태형 인간? 고통형 인간?

쇼펜하우어 행복론의 실전 적용

고통과 권태 사이 (brunch.co.kr)


 지난 글에 이어서, 쇼펜하우어의 세계관 하에서 어떻게 인간이 '그나마' 행복할 수 있는지 써 보려고 한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인간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갈등한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가 찾아낸 방법은, 내가 '고통형 인간'인지 '권태형 인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내가 고통 상태를 '그나마' 편하게 느끼는 사람인지, 권태 상태를 '그나마' 편하게 느끼는 사람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그렇게 나를 파악하고 나면, 어느 정도의 권태 내지 고통에 나를 맞춰나갈 수 있다. 


  만약 내가 권태를 즐기지 못하고 고통은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걸 받아들이고 적절한 양의 고통을 내 인생에 세팅해 놓으면 된다. 이런 사람은 '고통형 인간'이다. 가만히 있는 것을 못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서울대학교를 다닌 내 주변에는 고통형 인간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결핍에 민감하다.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느낌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빡센 환경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즐긴다. 


  '권태형 인간'은 권태를 즐긴다. 약간의 운명론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권태형 인간도 물론 권태를 느끼고 '벗어나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권태형 인간은 고통보다는 권태를 선택한다. 


  



  이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한테 해 보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자기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대형 로펌에서 '갈리고' 있는 변호사 친구가, 자신이 고통을 즐기는 인간이라고 대답하기는 몹시 어렵다. 반면 백수 친구가 자신은 권태형 인간이라고 답하기는 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사람은 점점 굳어지고, 자신을 알게 된다. 대형 로펌에서 갈리면서도 회사를 때려치지 못하는 친구들은, 점점 자신이 고통은 참을 수 있어도 권태는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나는 내가 평가하기에 권태형 인간에 가깝다. 물론 세상 사람들을 일렬로 쭉 줄세운다면 고통형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내 준거집단이 되는 서울대 동문 /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나는 분명 권태형 인간이다. 




  확신의 권태형 인간인 변호사로서 나는, 그에 맞게 내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돈을 많이 준다는 큰 로펌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은 단념했다. 대신 내 주변 사람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서 도와 줄 수 있는 작은 사무실을 열어서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변호사가 되고자 준비하고 있다. 아마 그래도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되지 않을까?


  이렇게 고통과 권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내가 해석하기로는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이다. 


  여러분들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열심히 성찰하셔서, 지속가능한 권태/고통을 목표로 한 삶을 시작해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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