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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변 May 30. 2023

고통과 권태 사이

쇼펜하우어가 찾아준 인생의 나침반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시계추와 같은 것이다 


나는 저 문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가끔씩 삶은 너무 고통스럽거나, 너무 무의미하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선택을 지지하지는 못해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삶은 고통일 뿐이다 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위안을 얻을 때도 있었지만, 뭔가 허전하였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살아가다 보면 분명히 기쁠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다. 또한 고통이다 라고 정의한다고 내 인생이 실체적으로 나아질 수는 없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인다고 해서, 서울대생으로서, 변호사로서, 누군가의 아들, 남자친구로서 내가 갖고 있는 양식을 완전히 버리는 결정을 할 수는 없다. 누구나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런 나에게 빛이 된 것은 쇼펜하우어의 문장이었다. 위 문장에서 나는 비로소 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었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고통'의 상태란, 결핍의 상태다. 사람들은 돈을 더 벌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예뻐지고 싶다, 내 사업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핍이다. 결핍을 느끼는 사람은 고통을 겪는다.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즉, 고통을 겪지 않으면 결핍을 채워 성장할 수 없다. 고통 없이 결핍을 채울 수 있다면 그건 꿈과 같은 소릴 것이다. 


자 그렇게 고통을 마주한 사람이 결핍을 충족하였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 사람이 행복해졌을까? 아니다. 그는 곧 '권태'를 마주한다. 


우리는 이런 '승자의 혼미'를 곳곳에서 마주친다. 로또 1등을 맞았지만 끝내 불행해진 사람, 굴지의 기업을 일구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내모는 사람 등. 사람은 성취 그 자체로써 행복해질 수 없다. 고통으로써 결핍을 극복한다고 해서 곧바로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은 시지프스의 돌처럼 굴러내려가 버린다. "이제 뭐 해야 되지?" 라는 권태가 찾아온다. 


그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또 다른 결핍을 찾아낸다. 100억에서 200억으로, 300억으로. 석사에서 박사로. 90타에서 80타로, 싱글로. 


그럼 인간은 언제 행복한가?


쇼펜하우어 역시 부처님과 같이, 삶은 근본적으로 불행한 것이라고 본다. '고통'과 '권태' 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슬겅슬겅 움직이는 시계추처럼 삶은 불행의 양태를 느릿느릿 바꾸어 가며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쇼펜하우어에게서 희망을 발견했을까? 

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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