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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사의 달콤씁쓸한 뒷맛

by 황변

국선변호사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뭘까. 파렴치한 범인들을 변호하는 극악무도한 변호사?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나랏돈 받으면서 지질대는 변호사?


국선 변호사에 대하여 일반인 분들이 가장 먼저 아셔야 할 부분은, '국선 변호사' 는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다. 첫째는 '국선 전담 변호사' 라고 하여, 나라로부터 아예 월급을 받으면서 국선 변호 일에만 종사하는 분들이다. 이 분들은 특정 법원(ex. 서울북부지방법원)에 소속하여서 해당 법원의 형사사건 피고인들을 변호하는 일만 할 수 있고, 다른 일들을 할 수 없다. 사실 일반적인 용어로 국선변호사를 이야기하는 경우 이 첫 번째 분들을 가리키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국선 변호인' 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국선 변호인' 이란 나와 같이 일반 변호사로 활동하는 사람이 특정 법원에 국선변호인으로 등재하여 달라고 신청한 후, 해당 법원에서 배당하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을 변호하는 일이다. 1명의 국선 피고인을 변호하여 변호사가 국가로부터 받는 수당은 50만원 정도이다. 그마저도 요 사이 법원에 돈이 없어 체불되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기사 내용만으로는 '국선 전담 변호사'의 월급이 밀린 것인지, '국선 변호인'에 대한 수당이 밀린 것인지 불명확하다)


[단독] 월급 밀리고, 사건은 많고 열악한 국선전담변호사 처우


내 주변 개업 변호사들은 국선변호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


돈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에는 사건보다 변호사가 훨씬 많기 때문에 국선 변호사로 활동하더라도 사건 배당이 잘 되지 않아서 생계에 유의미한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인천, 경기 등으로만 가더라도 한달에 두세 사건씩 배당하여 주기 때문에 사무실을 꾸려 나가는데 유의미한 도움이 된다. 혹시 개업을 꿈꾸는 변호사님이 계신다면 참고하시라. 지방으로 가면 '굶어죽을 일은 없다'.


형사사건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하는 분들도 있다. 변호사는 본인이 하고 싶은 사건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들어오는 사건을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소송절차에 대한 감이 중요한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자칫 감을 잃어버릴 수 있다. 국선변호 활동을 통하여 한두달에 한 사건 정도씩 수행하다 보면 절차를 환기하여 감을 새로이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분들도 있다. 나도 그렇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국선변호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거창하고, 수당도 너무 적고 힘든 점이 많지만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끊을 수가 없다고나 할까. '내년에는 기필코 그만둔다' 하다가도 다시 하게 되는 맛이 있다.


국선 사건의 피고인들은 대부분 전과가 많고 생활이 어려워 말이 거칠고 고집이 있다.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정말 대하기 힘든 유형이다. 그런데도, 국선변호 일을 하다 보면 피고인의 억울한 점을 이 세상에서 나만이 알아주고, 그 점을 재판부에게 잘 전달해서 잘못한 것보다 지나치게 큰 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선 변호사, 아니 변호사의 역할이라는 점이 새삼 와닿는 순간이 많다.


내 고객 즉, 내게 돈을 주고 사건을 맡겨 주시는 분들에게 좋은 결과를 안겨 주는 것도 행복하고 보람차지만, 그 행복과 보람은 솔직히 말해 너무나 짧다. 그들과 함께하는 거의 모든 시간은 고통과 긴장의 연속이다. 이렇게 나를 믿고 맡겨 주셨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으로 고민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변호사로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가 없다. 이 사건은 얼마짜리, 그러니까 이겨야 하는데. 돈을 이만큼 받았는데, 나를 저렇게 믿고 계시는데, 결과가 안 나오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


국선 피고인들께서는 내게 땡전 한 푼 보태주는 것 없으니, 그런 부담이 없다. 역설적으로 그들과의 관계에서는, 긴장과 책임은 사라지고 내가 하는 변호사업의 본질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부담 없이 진행하는 사건들에서 결과가 더 좋은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기분 탓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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