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어제), 네이버를 통해서 상담 예약이 잡혔다. 가타부타 어떤 이야기가 없는 상담. 중년 남성의 이름 세 글자와 11글자의 휴대폰 번호.
상담은 평범하고 단순한 사건이다. 무미건조한 사건. 사진을 편집하는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고 불법으로 다운로드, 사용하다가 벌금을 문 다음 민사소송을 당한 사건이다. 이런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는 '저작권 헌터' 팀과 계약을 맺어 불법 다운로드 사용자들을 적발, 내용증명을 보내 몇천만원의 합의금을 요구한다. 공포 작전이 먹히지 않으니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를 진행하고, 민사소송까지 건다. 프로그램을 구매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벌금은 나오지만(100~200만원) 민사소송은 다른 이야기다.
손해배상 소송을 이기는 건 정말 어렵다. 손해의 발생까지는 어떻게 입증하더라도, 손해액의 특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이야기니까 그만하고.
상담하러 오신 분은 키가 훤칠하고 마른 몸매의 사장님. 깡마른 성미일 것 같다는 첫인상과 다르게, 젠틀하고 합리적인 분이시다. 여담이지만 상담 테이블에 마주앉은 사람이 합리적일 확률은 매우 낮다. 여기서 합리적이라 함은 어떤 종류의 분쟁이든 자기가 책임질 것을 기꺼이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고 양보할 의사가 있다는 것. 법이란 때로 아주 교묘해서 생각과 다르게 동작하는 경우가 많고, 그걸 받아들이는 분들은 적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변호사의 조언을 믿는다는 말과 같기도 하다. 변호사는 합리적이니까. 나는 합리적이니까.
그런 분들일수록 내 상담은 솔직해진다. 꽤나 많은 사건들에서, '나한테 돈 줄바에는 그 돈을 상대방한테 주면만사 오케이다' 라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천~3천만원을 두고 싸우는 소액 사건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렇다. 에라 모르겠다, 솔직히 말씀드린다.
"사장님, 이거 상대방도 3천만원 다 받을 생각 아니에요. 제가 이 사건 끝까지 판결문 받아드리려면 550만원 정도 받고 해드릴 수 있는데, 이거 상대방한테 550만원 준다고 전화하면 바로 받을걸요? 그냥 돈 저 주지 마시고 상대방 주세요."
그런데 사장님은 한사코, 변호사님과 해 보고 싶다고 손사래친다. 뭔가 굴복하는 거 같아서 싫단다. 자세를 고쳐앉는다. 입이 트인 김에 사장님의 뒤통수를 치고 떠난 동업자들에게 어떻게 엿을 먹일지 같이 궁리도 해 본다.
깔끔하게 1시간 동안 진행된 상담을 마친다. 할 말이 다 끝나면 깔끔하게 일어나는 사장님. 대부분의 상담 내방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을 당했던지라 마침내 속얘기를 할 수 있고, 그걸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보니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하면서 상담시간은 한없이 늘어져만 간다. 상담료는 30분당 10만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정말 알맹이만 따지면 15분만인데도 1시간을 앉아 있다 보면 20만원을 달라고 하기 겸연쩍을 때가 많다.
일어나시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라고 하시는 사장님. 그런 분들 중 다시 연락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보통 상담을 하고 바로 계약을 하시던가, 그렇지 않으면 영영 연락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사장님은 정말 연락을 다시 않으셔도 서운하지 않다. 정말이다.
연락 주셔야 돼요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