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노는데 애를 어린이집에 왜 보내?

-남편의 큰어머니 이야기

by 진영

집안의 늦둥이 막내였던 남편에게는 내 아빠와 동갑의 사촌형이 있었고, 나의 외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큰어머니가 계셨다. 결혼 초 어느 명절 날, 남편과 아주버님이 큰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나가자고 했다. 남편을 따라 나선 큰어머니댁,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서 병원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셨다고 했다. 큰어머니댁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정말 놀랐다.


노인이 혼자 산다는 것은 시아버지 같은 건 줄 알았다. 곳곳이 더럽고 쿰쿰한 노인 냄새가 배어서 젊은이들은 가고 싶지 않게 하는 그런 집을 만들어 놓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남자 노인이 혼자 산다는 것과 여자 노인이 혼자 산다는 건 다른 걸까?


혼자 사는 큰어머니댁은 어디 하나 먼지라곤 없어 보였고 주방살림까지 너무 깔끔했다. 넓은 집에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이 집안을 더 빛나게 했고, 베란다의 식물은 싱싱했다. 쿰쿰함이라고는 없었다. 집안의 공기는 숨쉬기 편하다 못해 향기로운 집이었다. 매일 집에 와서 집안 살림을 해주고 가는 도우미가 있다고 했다.

80이 넘은 백발의 노인은 흐트러짐이라고는 없어 보였고, 단정한 생활 한복을 입고 계셨다. 늘 그런 한복을 일상복으로 입고 계실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집이라고 해서 나처럼 늘어진 티셔츠에 파자마를 편하게 입고 돌아다니실 것 같지 않은 분이었다. 특별히 시조카 내외가 인사 온 날이라고 해서 그런 옷을 입고 계신 분이 전혀 아닌 것만 같았다. 뭐지? 이 아우라는?


다리가 불편한 큰어머니는 인사 온 조카들 앞에 의자를 놓고 앉으셨다. 아주버님과 형님 그리고 남편은 큰어머니와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물었다. 아주버님 형님 남편 순서대로 질문을 하시더니 이번엔 내 차례가 되었다.


"재환이 각시는 요새 어떻게 지내는가?"

"아...아...저요? 애기가 이제 막 돌이 지나서요.. 오전에 잠깐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해서 적응 시키고 있어요"

"어린이집? 거길 왜 보내? 집에서 놀면서 애를 봐야지"

"아........음......그게....."


나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구원의 눈빛으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오빠가 뭐라고 말 좀 해~'


그 이후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남편이 무슨 말을 하긴 한건지 기억이 안난다.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는 기억밖에는..... 80이 넘은 할머니가 나를 집에서 그냥 노는 여자라고 말한 것도 싫었고 놀면서 애는 안보냐고 대놓고 말하는게 너무 챙피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편의 큰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미국유학을 시키고 유명 대학에 교수로 만들었다고 했다. 교수에서 멈추지 않았고 그 대학의 총장까지 하셨다니, 아들을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게 한 어머니로서의 자신감과 당당함이었을까? 큰어머니에게서 풍기던 아우라는 아들을 성공시킨 엄마에게서 나온 당당함같은 것이었을까?


그런 큰어머니의 눈에 나는 하는 일도 없는 젊은 여자가 애기를 어린이집에나 보내고 남편 월급을 축내며 핑핑 노는 것처럼 보였을까?


남편의 큰어머니를 뵙고 온 그 날의 후유증은 꽤 오래갔고, 나는 한동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굉장히 죄스럽게 느껴야 했다. 굳이 그런 말을 듣지 않았더라도, 딱히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필요가 있는 것일까에 대한 마음 속의 갈등은 엄청 많았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자존감이 바닥이고 너무 우울했던 나는 아이가 돌만 지나면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지리라 다짐했던 터라, 갓 돌잔치를 끝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한 당연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오전 4시간 동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고 다시 공부를 하는 시간은 나에게 좌절된 꿈에 절망하지 않고 용기내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도 만들었다. 그렇지만 희망을 품어가는 그 시간에도 나는 늘 갈등했다.


'어린이집을 보내? 말아?'


남편의 큰어머니 뿐만이 아니라, 밖에 다른 누군가가 볼 때도 나는 그 당시 번듯한 직장이나 직업이 있는 여자가 아니었고 그냥 공무원 와이프일 뿐이었기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알지만 자존심 상했고, 알지만 그런 말을 듣는 건 싫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노는 여자가 애는 안보고 어린이집에나 보낸다는 말을 들어가며 아이를 키웠고, 그 아이가 어느새 열 세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 놀던 여자는 이제 자기 학원을 차려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편보다 더 돈벌이를 잘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다시 남편의 큰어머니를 만난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거 같은데. . .

"저 안 놀아요~"


하늘에서 다 보고 계시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며느리 공조 목적의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