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그렇게 도리를 가르쳤다. 며느리로서의 도리, 동서로서의 도리, 아랫사람으로서의 도리.
알았다고 대답을 해놓고 알아서 하겠다는 뒷말을 붙이는 이유는 형님에게 통화버튼이 쉽게 눌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뭐라고 버튼을 못누르고 마음 한켠은 이렇게 묵직한건지 한 참을 생각해본다.
남편과 아홉 살 차이가 나는 형과 형수. 나와는 12살 차이가 나서 띠가 같다.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 남자 친구의 대학 졸업식 날 처음으로 남자 친구의 형과 형수를 만났다.
"몇 학번이에요?"
"아.. 저는 98학번이에요"
" 어리네.."
어색한 분위기에서 남자 친구의 형은 학번이라도 물어보면서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하려고 했을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막내 동생이 자기보다 더 어린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뻘쭘하기만 하셨나 보다. 형 옆에 형수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어린(일곱 살, 다섯 살) 두 딸만 챙기고 계셨다. 그렇게 첫 만남을 가졌고 5년 후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모였다. 남자 친구의 말없고 어려운 형수님은 나에게 하나밖에 없는 형님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일 년에 네 번은 꼭 만났다.
추석과 설, 아버님 생신, 어머님 제사. 모든 행사는 꼭 형님 댁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멀리 살지만 형님 댁으로 꼬박꼬박 갔다. 그런데 우리가 형님 댁으로 가는 날에 형님과 아주버님은 냉랭한 기운을 풍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형님은 때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긴 했지만 함께 둘러앉아 먹는 일이 거의 없었다. 늘 입맛이 없다고 하거나 있다가 따로 먹는다는 것이었다. "동서는 같이 먹어" 그러시면서 방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그게 더 불편했다. 형님은 왜 함께 드시질 않을까? "같이 드세요. 형님" 그러면 늘 "나는 괜찮아"라고 답하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 어렵고 어색했다.
한 번은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오빠!(그땐 나도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다) 형님 있잖아. 왜 같이 밥을 안 드셔? 항상 그러시는 거 같아"
"형수님이 밥을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래"
"아.. 그래도 같이 먹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항상 표정이 좀 안 좋으셔서 쫌 무서워"
"형수님이 무뚝뚝한 성격이라 그래. 네가 잘 웃고 말도 잘하니까 먼저 말도 걸고 그래 봐"
그러던 신혼초 어떤 날은 작은 시누이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며느리끼리는 시댁흉을 같이 보면 친해지는 거니까 그렇게 하면서 좀 친해지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시댁이면 자기 친정인 건데 그 집을 같이 흉보며 친해지라고 하다니,
남편과 시누이에게 미션을 부여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 씨 집안에서 정 씨 아닌 사람은 형님과 나 둘 뿐인데 왠지 동지애 같은 걸 발휘해서 잘 지내보고 싶기도 했다.
형님 집에 간 어느 날, 조용하고 굳은 표정의 형님을 보면서 어색함은 애써 감추며 내가 끄집어낼 수 있는 싹싹함은 다 꺼내보았다. 아니, 없는 싹싹함을 좀 빌려와서라도 꺼내야 할 거 같았다.
"형님~ 시어머니 얼굴 본 적도 없는데, 혼자서 이 제사를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네요" 이건 나의 진심이었다. 진심을 담은 이 말 덕분이었을까? 형님은 나에게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나보다 먼저 10여 년 전 시집 온 시댁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형님이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혼자 계신 시아버지를 모셔야 하니 형님댁에서 모시는 걸로 동생들이 결정을 해서 통보를 했었다는 이야기. 작은 시누이가 형님에게 대놓고 "언니가 솔직히 아빠한테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해서 너무 충격이었다는 이야기. 시댁 식구들이 와도 싹싹하지 못하고(성격이 원래 좀 무뚝뚝한 건데) 표정이 늘 굳어 있으니 아주버님이랑 자꾸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 막내 시동생 결혼할 때 시어머니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을 때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는 이야기까지.
그렇게 형님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도 조금씩 형님이 편해졌다.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어색함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형님 댁에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2020년 2월. 코로나가 시작되던 즈음 시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우린 그동안 우리의 철없음을 함께 후회했고 고백했다. 이렇게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렇게 죽음은 허무한 것인데... 왜 시아버지에게 노력하지 않았을까를 함께 자책했었다.
시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형님에게서 특별히 연락은 없다. 나도 하지 않는다. 명절인데 형님댁이 아니라 친정집에서 누워서이러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