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5년 차쯤이었다. 남편은 흑마늘이 몸에 좋다는 걸 어디서 듣고 '흑마늘'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더니 만들기 시작했다. 4년 동안은 지치지도 않는지 흑마늘을 만들어댔다. 어디 마늘이 좋은 지부터 검색해서 구입을 하고 다듬고 직접 제조하는 남편을 보면서 아기 키우는 것 하나도 벅찼던 나는 남편이 너무 한가하게 구는 것 같았고, 그거 할 시간에 애기들이랑 놀아주지 그러면서 구시렁댔다.
언젠가는 토마토가 건강에 좋다면서 토마토를 박스 채 사오지를 않나, 주스를 산다 그러면 토마토 주스만 사라고 그랬다. 남편이 시켜서 집에 도착하는 택배들은 대부분 해외직구로 구입하는 보스웰리아, 혹은 비타민D, 비타민 C 들이다.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각종 견과류들이 주기적으로 집에 온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가장 좋다는 유산균을 어떤 약국에서만 구입해서 먹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남편이 아침마다 7가지의 과일과 채소를 넣고, 거기에 올리브유를 조금 넣고 콜라겐 가루까지 넣은 다음 갈아서 내어주고 있다. 아침 시간이라는 게 10분도 1시간 같기만 한데, 남편은 늘 그렇듯 차분히 하나의 재료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넣어서 주스를 만든다. 어떤 날은 저러다 애들 학교도 지각이고 본인도 지각하는 거 아닌가 싶게 반드시 그 주스를 챙겨서 마시고 가족들에게까지 챙겨주고 출근을 한다. 심지어 자기가 일과 시간 중간에 마실 것까지 텀블러에 챙겨가는 아주 세심한 사람이다.
쉬는 날에 보는 TV프로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 하나는 건강프로. 나는 운동도 안 좋아하고 건강에도 관심이 없으니 재미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남편과 맞는 게 하나도 없는 것만 같아서 숨 막히고 싫었다. 나와 삶의 가치관이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아서 답답하고 짜증 나고 싫은 날도 많았다.
이 정도면 정말 저 사람 인생의 모토가 '건강'인가 보다 싶게 보인다.
그런데,
이유가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남편의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시어머니..
나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진으로만 본 적 있는 나의 시어머니..
남편의 어머니는 남편이 고등학교 시절 유방암에 걸렸다고 했다. 그 시절 1990년대 중반에는 암이라는 것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았고, 생소했을 것인데.. 온 가족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무사히 수술을 했고 건강을 되찾은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남편이 스무 살이 되는 시점에 어머니는 유방암이 재발을 하고 금방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나마 자식들이 성인은 된 단계라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그래 봤자 자식들은 모두 서른도 안된 20대들이었고, 어머니의 나이가 그때 51세였다고 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엄마는 너무 젊은 엄마이고, 자식들도 젊다 못해 어렸다.
남편과 형제들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트라우마'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남편과 형제들, 심지어 시아버지까지 시댁의 온 식구들은 내가 볼 때 '건강 염려증'같은 게 생긴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시어머니의 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해는 되었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100퍼센트 공감은 어려웠다. 그래서 시댁의 분위기나 남편의 행동들이 답답하고 싫었다.
며칠 전 G언니의 유방암 4기와 전이 소식을 들은 이후 나는 마음의 지옥에서 지내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은 나에게 9가지 과일과 채소를 넣고 간 과채주스를 내어준다. 그걸 보면서 눈물이 났고,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남편을 다 이해해주지 못했던 그 마음이 미안했다. 저 사람은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가 없는 그 긴 시간 속에서도 어쩌면 저렇게 반듯하게 자랐을까...
8년을 함께한 G언니의 아픔과 고통이 내 마음 속에서 복잡하고, 혹여라도 잘못될까 두려운 날들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나도 고작 8년을 함께 한 사람의 아픔 때문에 이렇게 힘든데..
자기를 낳아준 엄마가 그렇게 아팠고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버렸을 때 그 마음은 어땠을지 나는 상상도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