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시절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그 도시에서 나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작은 신혼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그 당시 나의 일상을 일기처럼 올리곤 했었다. 댓글이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댓글의 횟수가 잦아지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원래 국어강사였는데, 강사라는 직업이 자신과 맞지 않아 적성에 맞는 일을 찾다가 '목공예'를 배우고 창업까지 하신 분이었다. 강사였다는 거, 그리고 목공예를 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배운 목공 실력으로 집을 꾸민다는 것들이 모두 나의 취향과 참 잘 맞았다. 우린 참 잘 통했다.
그러다가 서로 비슷한 시점에 첫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그분은 나에게 임산부라면 꼭 챙겨 먹는 '엽산제'를 보내주기도 했다. 답례로 나는 내가 직접 손바느질로 만든 인형을 보냈다. 나누는 마음이 감사하고 좋았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밑바탕에 깔린 경험들이 비슷하고 취향이 비슷하고 현재 살아가는 삶이 비슷하다는 것! 그것은 아주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나를 감추고 살면 내 실패와 좌절과 힘듦이 감춰지고 좋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은 새로운 관계를 찾아 나섰고 맺었고 위로받았다.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고 키우다 보니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정신도 없고 체력도 안되었다. 서서히 블로그는 멀어져 갔다. 나뿐만 아니라 그분도 아이를 키우면서 공방 사업까지 하시니 정신없으신 듯 느껴졌다. 우리의 블로그는 서서히 잠들어 갔다. 2년 정도를 열심히 소통하고 선물까지 나누며 지낸 시간들이 조금씩 흐려졌다. 온라인 세상의 관계는 내가 의지를 가지고 찾아 들어가지(접속) 않으면 스르륵 무너져 내려버리는 모래성 같았다.
세월이 흘렀다. 온라인 매체는 더욱 진화를 해서 블로그만이 아니라 새로운 채널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행에 편승하 듯 우리는 그곳에 탑승을 한다. 요즘 웬만한 사람들은 다한다는 인스타그램. 그래도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관계를 맺는 것보다 멀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들 때문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판 몇 번과 클릭 몇 번으로 맺어지는 관계, 그러다 현실 속 내 삶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거나 또는 그 사람에 대한 오해가 생기면 클릭 몇 번으로 '끊기'와 '차단'이 되어버리는 허무한 관계. 그런 곳에 에너지와 시간을 쓰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도 소심한 내가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다. 브런치 글로 만나서 인스타로 이어지는 인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외에도 '좋아하는 것들'이 비슷하면 끌림을 느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끌리고, 글을 쓰는 사람, 소박하고 단정한 살림살이를 하는 사람, 꽃을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나는 끌리고 누군가는 나에게 끌려서 서로를 팔로우하고 팔로잉하고 있다.
2월부터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온라인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빨간 머리 앤'을 딸과 함께 읽는 모임을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이 자라서 온라인 독서모임으로 커졌다(브런치 방의 수장 우혜진 작가님의 격려가 가장 큰 몫을 했다). 막상 시작을 해보니.... 모임이라는 게 혼자서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티키타카가 되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았다. 각자 자기 세상에 살면서 가끔 오는 듯한 사람들을 대하는 게 어려웠다. 그나마 불쑥 오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참여한다고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었다. 이건 온전히 나의 문제일까? 역시 온라인 관계는 이렇게 느슨하고 무책임한 것인가? 혼자서 생각이 많아졌다.
2기를 진행하면서 내린 결론은 '온라인 독서모임'을 이끌어가는 과정은 나의 한계와 틀을 깨는 과정이구나.
온라인 관계에 대해 가졌던 회의적인 마음들,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기를 바라는 내 마음의 틀을 깨는 과정이 되었다.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각양각색이듯이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도 각양각색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독서교실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듯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하나의 경험이 되어주었다.
온라인 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참가비를 기부와 후원에 쓰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나의 이 작은 마음에 동행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매 기수마다 함께 하겠노라고 말해주는 사람, 너무 조용한 성격이라 말도 없고 표현도 없어 마음을 잘 모르겠는데 모집할 때는 1등으로 신청을 해주는 사람, 바빠서 책은 못 읽을 거 같은데 후원하고 싶다고 선뜻 입금부터 해주는 사람. 심지어 '맘클리후원'이라는 이름으로 누군지도 모르게 2만 원을 보내주는 사람(이 글을 보신다면 저에게만 살짝 귀띔을), 아픈 가정에 보태고 싶다고 더 넣어주는 사람까지,
아! 그리고 절대 빼먹으면 안 될 우리 브런치 방 작가들(무슨 수상소감 말하나 ~~~)
블로그든 인스타든 자기 브랜딩이 강하면 공유나 리그램이 어려울 텐데 기꺼이 해주는 분들.
소심하고 소심하기만 해서 온라인 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두려워 늘 머뭇거리고 뒷걸음치기를 잘하는 내가 온라인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모임을 이끌고, 그 모임으로 한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온라인 관계에서 경험하는 기적과 감사들이 이 좋은 봄날을 더 이상 울컥하게만 만들지 않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