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영 Mar 29. 2022

나는 정말 나쁜 년이다.

"G가 어디서 맥주를 좀 받은 게 있어요. 진영이 주고 싶다고 그러네요. 내일 제가 좀 주고 갈게요."

"아.. 맥주요... 아.... 네.... "

"G가 지금.. 암이에요.. 재발했어요.. 전에 그 유방암.. 4기래요. 그게 척추로 전이가 돼서, 그래서 아팠던 거예요.. 머리로도 좀 전이가 됐다네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주저앉아버렸다. G언니의 남편, 찬이 아빠의 전화를 받고...



  2014년 여름 동네 목공예 공방에서 우연히 만난 G언니와 국밥을 먹으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연애를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조금씩 서로를 알아갔다. G언니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는 꿈꾸던 것도, 자라온 환경도 비슷했다. 성격도 참 비슷하게 느껴졌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내가 떨어진 그 해 중등임용시험 최종면접에서 언니는 붙었고 나는 떨어졌다는 것 정도. 그래서 언니는 중등교사였고 나는 아니었고.


  내가 하고 싶었지만 나는 못하고 있는 것을 하며 사는 언니를 만나면 내가 자꾸 작아지는 거 같아서 싫었다.  내 안에 열등감을 마주하는 게 싫어서 언니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도 했다. 그런데 자꾸만 가까워졌다.  


내가 독서교실을 오픈하고 싶어서 공간을 보러 다닐 때 언니에게 미리 보여주고 어떤지 의견을 나누었고,

아이들 데리고 책 수업을 해보겠다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닐 때 가장 먼저 자기 아들 찬이부터 맡기고 싶다고 해주었고,

비 오는 날에는 부추전을 부쳐서 소복하게 한 접시 담아 배달도 해주었었고,

찬이가 유치원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는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같이 해결하려고 했었고,

4년은 독서모임을 같이 하면서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고민을 나누었고,

우린 그랬었는데...




 혼자서 한 달 반을 꽁하고 있었다. G언니에 대한 서운한 마음들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좋았던 날들, 좋았던 기억은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언니가 미웠다. 


3월 2일 날 아침, 독서모임 단톡방에 두루뭉술한 인사 한마디 남기고 훌쩍 나가버린 것,

내가 먼저 넓은 평수 집으로 이사를 가니 기뻐해 주기보다는 배 아파하는 게 눈에 보였던 것,

내 딸과 자기 아들을 비교하며 열등감 느껴하던 거,

내가 내 딸들에게 읽히던 책은 다 읽히고 싶다며 도서관에서 그 책들을 다시 대출해주라고 했던 거,

그래도 내 딸 같은 딸은 자기는 못 키우겠다는 등의 예민한 말을 뱉어내던 것,

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욕하던 G언니와 Y가 내 앞에서 생일 선물을 주고받던 것,

등등


8년 동안 좋았던 날들은 다 지워버리고 서운했던 날, 서운했던 말들만 나는 떠올렸다.

그래서 좋았던 날들은 덮고 눌러버렸다.


 옹졸하고 이기적인 나를 합리화하고 포장했다.

내가 아프다고, 내가 힘들다고, 나도 내 마음 지키며 살고 싶다고.

그러니 G언니 같은 사람은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이고 그러니 좀 멀리 해버리는 게 나를 위해 좋겠다고...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내 마음에 독을 품었다. 


그래서  두 달쯤 아팠다.

나만 아픈 줄 알았다. 



 G언니가  두 달 전쯤부터 연락이 뜸했고,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아들 찬이를 통해 소식을 듣거나,  찬이 아빠를 통해  코로나 확진 소식을 전했다.

아무리 코로나라지만 전화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전화를 하지 않을까..

그것마저 나는 서운해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내가 서운해한 것을 그 사람이 나한테 서운해하다고 생각하고 뒤집어 씌우고 그 사람을 (속으로) 욕했다.



지난주  미용실,

오랜만에 염색을 하러 갔다. 미용실 언니를 통해서 들은 말


"G선생님 있잖아요. 2주 전엔가 왔었어요. 근데 몸이 많이 안 좋은 거 같던데.. 지팡이를 짚고 남편이 부축을 해서 왔더라고요.. 젊은 사람이 몸이 어디가 그렇게 안 좋길래 그렇대요?"

"아.. 그래요.. 저도 요즘 연락이 좀 뜸해서 잘 모르겠네요.."


이상했다. 도대체 얼마나 몸이 안 좋으면 지팡이를 짚고 왔다는 걸까? 게다가 남편까지??

언니는 왜 나한테 전화도 안 하고 말도 안 하고... 

미용실에서 소식을 듣게 하는 것도 서운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서운해했고, 그러면서도 또 나는 아프다는데 뭘 자꾸 물어봐,

나으면 연락할 거야. 괜찮겠지...

수업에 온 찬이도 그랬다. 엄마 곧 건강해질 거 같다고..



그런데..

그런데..

아니었다. 



 처음엔 백신 후유증으로만 알았다. 내가 백신 후유증으로 고생할 때 언니도 비슷하게 조금씩 몸이 안 좋았다. 그래서 언니도 내가 먹고 나았다는 약을  약국에 가서 지어먹겠다고  했다. 허리가 조금씩 아프고 절뚝거려지긴 했지만,  디스크 초기 증상 같은 건 줄 알았다. 한방병원에 입원해서 몇 가지 치료도 받고 쉬면 나을 줄 알았다. 그래서 입원해 있는 동안 군것질거리도 사서 가고 그랬는데.. 금방 좋아져서 언니랑 또 같이 책도 읽고 같이 남편 흉도 보면서 커피도 마시면서 그렇게 지낼 줄 알았다. 요즘  좀 언니한테 서운하긴 했지만, 언니가 다 나아서 커피 한잔 사들고 "진영아~ "그러면서 독서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풀어져 버릴 걸 알았다. 우린 늘 그랬으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언니도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데... 언니가 아주 많이 아프다고 한다.

수술도 힘들고, 전이가 많이 되었다고 했다.. 학교도 정리 중이고... 이제야  받아들이고  지인 중에는 나에게 처음으로  알리는 거라고 했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언니에게 전화를 하기가..

언니 얼굴을 보기가 무섭다. 미안하다. 눈물만 난다.


나는 정말 나쁜 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련하고 애틋한 주산학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