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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Sep 24. 2022

치약같은 글쓰기

  주방살림을 하다보면 매일 설거지에 쓸고 닦아내야 할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매일 씻는 그릇들이야 그래도 깨끗하다 하겠는데  냄비를 올려두는 가스렌지 주변에 묵은 기름때를 발견할 때 답답하다. 이런건 누가 좀 알아서 닦아주며 좋으련만.. 누가 하겠나 결국 내몫인 것을..젖은 행주로 박박 문질러 보지만 잘 안된다. 각종 세제를 동원해본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남편이 알려준 가장 좋은 방법은 '치약'으로 닦기! 군대에서 배운거라나... (그렇게 잘 알면 자기가 진작에 좀 해주지). 정말 치약으로 씽크대, 가스렌지 주변들을 닦고 나니 새것처럼 반짝 반짝 빛이 난다.

  

   머리를 감고 예쁘게 드라이를 하고, 화장을 하고, 검은 슬렉스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가죽백을 메고 나가면 나는 멀쩡하게 괜찮은 사람이다. 심지어 걱정근심이라곤 없이 산 사람처럼 내 나이보다 몇 살은 어리게 보는 동안이기도 하다.( 내입으로 말하기 민망하나 사실 그러하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내 안에 묵은 때들이 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줄세워져서 평가받는 것에 반응하느라 생긴 비교와 등수에 대한 예민함, 누구보다 잘나고 싶었으나 평범해서 생긴 열등감,  친구는 가고 나는 못 간 **대에 대한 미련, 누구처럼 늘씬하고 예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해서 생긴 외모 컴플렉스,  내 능력과 노력에 대한 자책감 등

  

  이 묵은 때들을 깨끗이 지워내야 나는 온전한 엄마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중에 하나가 독서였다. 책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테리피들...일명 '독.서.치.료'  그렇게 5년 즈음  배우고 나에게도 적용하고 일로도 풀어냈다. 많이 지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닦아내도 완전히 처음의 새것은 되기 어려운 것처럼 남아있는 자국들이 보였다. 그 자국들을 완전 깔끔하게 지울 수는 없을까?


  2021년 7월  '엄마의 첫문장'이라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만났다. 매일 매일 한편의 글을 한달간 썼다. 그리고 '브런치작가'가 되어서 또 쓰기 시작했다. 어색하기만한 작가라는 네이밍.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를 가장한 일기같은 어설픈 '글쓰기'를 해나가면서 내 묵은 감정을 드러냈고 토해냈다.  내안에 쌓여 있는 타인에 대한 원망과 나 자신에 대한 자책도 거침없이 드러냈다. 드러내는 은 닦아냄이 되었다.


   1년 즈음 그렇게 했더니 나는 어느 정도 깨끗하게 닦여진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순전히 나만 알수 있는 기분같은 거다. 굳이 표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느냐라고 묻는다면 목소리에 더 힘이 생겼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함이 생겼다 정도?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이 무척이나 올라갔다는 것?  마음이 평온해지기  시작했다는 것..


   치약처럼 글쓰기로 내 마음에 묵은때를 박박 닦았다. 그래도 완전히 새 사람은 안되었나보다.. 현정이가 '웅녀되기' 프로젝트를 하자고 했다. 100일간 쓰면 진짜 새사람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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