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도 지겨웠고, 임용학원과 강의를 전전하는 것도 힘들었다. 나도 내 힘으로 돈을 벌어서 멋도 부려보고 인생을 좀 즐기며 살아보고 싶었다. 아빠는 내가 스물 여덟 살까지 공부를 하는 동안 학비며 학원비 용돈까지 늘 부족하지 않게 보내주셨지만 나이가 찰수록 아빠에게 받아 쓰는 돈은 어딘지 모르게 부채의식을 갖게도 했다. 교사임용 시험 합격 후로 모든 걸 유예하며 살았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서른을 향해가던 시점에 나는 포기하듯 도망치듯 공부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왔다. 스물여덟살까지 아빠돈으로 공부만 했는데 모아둔 돈은 없으니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서 바로 결혼을 하기에는 그것도 너무 안맞는 이야기 같았다. 일단 돈을 좀 벌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교직 공부를 했고, 학부 시절부터 과외와 학원강사 경험만 있었던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결국 학원가였다. 일타강사 스타강사도 많고 학교 교사보다 훨씬더 유능한 사람들이 드글드글한 곳이 학원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초부터 그런 강사를 꿈꾸고 있었다기 보다는 안정적인 교사생활을 꿈꿨던 사람에게 학원이라는 곳은 그냥 어쩔 수 없어서 가는 곳인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알바 정도의 의미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이 스물 아홉에 도망치듯 간 학원의 의미는 나에게 남달라야 했고, 그 곳에서 뭔가 의미를 찾아야 할 것만 같았다.
학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 점수로 말하는 곳이다. 안양에 있는 입시학원에서 전임강사로 일을 할 때 원장 선생님이 교사회의를 하면서 자주 하던 말이었다.
"딴짓 하지 말고 점수로 보여줘라!"
원장선생님의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 싶어 찔렸다. 나는 딴짓을 많이 하는 쌤이었기 때문이다. 중고등 아이들은 눈 앞에 시험과 모의고사 점수가 매우 중요하다. 기계처럼 공부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들도 수없이 많은 고민들로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마음이 뒤죽박죽인 아이들이 책상앞에 앉아서 딴생각 말고 공부에만 집중이 될까? 아이들 표정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힘든 마음이 느껴지는데..
그러면 "OO야~ 무슨 일 있어? 순간떡볶이 한컵 할까??"(순대와 간 조금을 종이컵 밑에 깔고 떡볶이 양념과 떡을 조금 넣어서 파는 것) 아이들과 약간의 간식을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아이는 조금 마음이 풀어지고, 다시 공부할 마음이 생기기도하고 힘이 생기기도 한다.
한달 간의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도 그랬고, 대학원 생활 중 학원에서 시간강사로 일할 때도 나는 그랬었다. 그게 나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중 3아이로 기억이 된다. 머리를 숙이고 문제지를 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 머리 군데 군데가 불에 그을린 듯 말려 있다. 뭐지? 직접 물어보기는 왠지 조심스럽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 아이를 통해 그 남자 아이가 은따를 당하고 있고, 몇몇 아이들이 짖궂은 장난을 해서 머리카락이 좀 그을린 거 같다고 했다. 내가 먼저 다가가 그 사연을 아이에게 물어보기에는 예민한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아이가 들키고 싶지 않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연은 모른채 하면서 아이를 원래 내 스타일대로 대했던 기억만 난다. 그렇게 아이는 중3을 마칠 때까지 그 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그 학원을 그만 둔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하고 있는데, 원장선생님이 불러서 나갔다. 강의실 밖에는 그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무척 고마웠던 마음이 기억난다.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가 그 아이에게 크게 잘해준 게 없었던 거 같았기 때문이고 고마웠던 건 그런 나를 다시 찾아와주었다는 것이었다.
학교 선생님도 아니고 일개의 학원 선생일뿐이었던 나를 아이가 다시 찾아와주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다시 찾아가고 싶은 선생님은 꼭 학교에만 있는게 아니다. 학원에도 있는 거였다. 학교냐 학원이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한 아이의 마음에 따뜻함으로 기억이 되어준다면, 한 아이의 인생에 다시 한번쯤 찾아가보고 싶은 선생님이면 족한 거다"
스물 아홉에 가졌던 그 마음이 다시 그립다. 그 마음을 다시 끄집어 내야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