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두번째 겨울을 지내고 있다. 나에게 마음 속 숙제를 남기고 떠나신 아버님.
아버님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글로 토해내면 아버님에 대한 이해가 생길까, 마음 한켠의 짐을 좀 내려 놓을 수 있을까, 브런치에 매거진을 만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굿바이 시월드 -> https://brunch.co.kr/magazine/siworld
결혼을 해서 12년을 본 나의 시아버지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래서 늘 남편에게 "아버님은 왜 그래?"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그 질문이 가끔은 부부싸움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버님 문제' 로 남편과 다투고 나면 나는 아버님에 대한 원망을 가졌다.
'아버님만 아니었으면 안싸웠을 텐데....' 자꾸만 내 결혼 생활의 오점은 아버님에게서 시작되는 것만 같은 마음에 탓을 했고, 불만을 가졌다. 그런데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나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뿐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해결책도 되지 않았다.
결국은 아버님에 대한 나 스스로의 이해가 필요했다.
내 시아버지는 39년생으로 연세가 꽤 있으셨다. 시아버지는 나의 아빠보다 13살이 많았다. 내가 결혼할 당시 나의 아빠는 환갑도 안 된 나이였지만 시아버지는 이미 칠순이었다(남편은 그 집의 늦둥이 막내였던 것이다). 내가 결혼할 당시 이미 많이 연로하신 분이었다. 시어머니는 이미 50대 초반에 돌아가셨고, 그래서 시아버지는 혼자였다.
시아버지는 우리나라 해방도 되기 전에 태어나서 아주 가난한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아버님은 지방의 지역 유지 집안에서 막내로 태어나 자기보다 18살이나 많은 큰 형(큰형이 능력자)의 보살핌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그 지역에서는 명문이라고 하는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소위 명문대라고 하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신 분이었다. 그 시절에 그 정도의 학벌이라면 장관은 해도 됐을 거라고 말할 정도의 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이른 살의 시아버지는 장관은 고사하고, 시골의 말단 공무원으로 애진작에 퇴직하고, 자식들에게 용돈 받아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노인일 뿐이었다. 게다가 혼자 사는 외로움에 자꾸만 혼잣말을 하는 증상을 갖고 계셨다. 학벌지상주의의 대한민국에서 그렇게나 좋은 학교에서 많이도 배운 양반이 저렇게 아무런 능력없이 초라하게 늙어간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것만 같았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자기 학비와 용돈을 알바를 해가며 벌고 있었다. 그 당시 남편의 그런 모습은 자립심이 강하고 멋져 보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학비를 모두 아빠가 보내주어서 공부만 해본 나로서는 학자금 대출이라는 걸 사실 처음 알았다. 남편은 학자금 대출이 무이자(또는 저리)에 장기간 분할 상환이 가능해서 썼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그것조차도 이해가 안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이해가 안된 건 '아빠가 있는데, 왜 아빠는 학자금을 보내주지 않았을까?' 였다. 결혼을 해서 3년째까지 남편의 학자금은 매달 조금씩 남편의 월급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자식이 공부한다고하면 원없이 지원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나로서는 남편의 가정사가 이해가 안되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아버님은 '아버지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사람처럼만 보였다.
이렇게 나는 아버님의 하나 하나가 다 이해가 안되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서로가 자라온 환경과 문화의 차이로 많이 다투기도 한다는데, 나는 정말 심각하리만큼 아버님이 이해가 안되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머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 '방문객' 중에서
정현종의 시에서처럼 남편이 나에게 오면서 남편의 아버지가 나에게 왔고,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도 나에게 왔다. 그런데 나는 아버님의 과거와 현재가 너무도 이해가 안되었다. 아버님의 일생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없는 나의 옹졸함을 어찌하지 못해 괴롭다.
이제 그는 떠났고, 어쩌면 더 이상 이해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이해하고 싶다. 그의 삶을 이해해서 그를 온전히 나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떠나버린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