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바깥은 잿빛이었고 스산했다. 비가 왔다 안왔다를 반복하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런 날엔 엄마가 끓여주는 따끈한 찌개가 생각난다. 이제는 내가 엄마이니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따끈한 찌개를 끓여야 한다. 찌개 생각으로 퇴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에 들어왔다. 간발의 차로 남편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
"어? 먼저 들어왔네?"
그의 표정이 어둡다.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촉이 온다. 남편이 입을 연다.
"큰누나.. 누나가 암이래.."
"어? 정말?.. 무슨.. 암?"
"유방암..."
나는 그 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갑자기 머리가 멍했다. 어머니가 걸렸었다는 그 암. 그리고 그 때의 어머니와 같은 나이의 큰누나.
우연일까....
2008년 3월 결혼을 하고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친정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론 우리의 결혼식 날에 남편의 큰누나가 참 많이도 울더라는 것이었다. 보통 결혼식에 가보면 신부와 신부 엄마가 우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나도 눈물많은 사람 꼽으라면 꼽힐 사람이라 결혼식때 혹시라도 펑펑 울까봐 미리 손수건도 준비하고 그랬다. 그런데 정작 나는 울기는 커녕 너무 웃고 좋아해서 친정아빠가 '시집가니까 그렇게 좋냐'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웃느라 신랑쪽은 제대로 못본 거 같은데, 친정 엄마 말씀으로는 큰누나가 어찌나 울던지 하객들이 물어봤다고 했다. 왜 그렇게 누나가 우냐고...
짐작컨데, 장가 가는 막내가 큰누나 마음에는 대견하기도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자기 엄마 생각이 많이 났을 것이다. 남편의 어머니는 남편이 고등학교 시절 유방암으로 수술과 재발을 반복하며 3년 만에 결국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때 남편은 스무살, 큰누나의 나이는 스물 다섯, 꽃같이 좋을 나이에 엄마의 병과 죽음을 겪으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 것이다.
큰누나 입장을 생각해보면 본인 결혼할 때 친정 엄마가 안계셨으니 살갑게 세세하게 챙겨줄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아이 낳고 살면서도 늘 친정 엄마의 도움은 느껴본 적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섯 살이나 차이 나는 막내 동생 늘 마음에 걸려하면서 챙기고 살았다. 그런 동생이 결혼한다 하니 친정엄마도 생각나고 이런 저런 마음이 들었겠지 싶다.
나는 시어머니가 안계신 집으로 시집을 가면서 어머니의 부재가 얼마나 많은 결핍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순간 순간 느끼곤 했다. 그런데 그 결핍을 조금이라도 채워주려고 노력해준 사람이 바로 큰누나였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단과 예물 문제가 있었다. 우린 젊었고 가진게 많지 않았기에 반지 하나만 나눠 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큰누나가 나에게 다른 건 몰라도 '순금 세트'는 꼭 받는거라고 했다. 큰누나의 지론은 자기도 결혼하면서 순금세트를 받았는데 그걸 가지고 있으면 살다가 급하게 힘든 일이 생길 때 보탬이 될 수도 있고 든든하고 좋다라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시댁 상황을 미안해하며 자기 돈으로 동생의 아내가 될 나에게 완벽한 예물세트(순금, 다이아몬드, 진주 등등)를 선물해주었다
결혼 13년 동안 다행히 그 예물을 팔아서 쓸만큼 힘든 일은 없었다. 지금도 장농 속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
막내동생 공부할 때 틈틈이 용돈 챙겨주던 누나,
막내올케 애기 낳았다고 돌반지며 애기옷 사서 와준 누나, 막내동생 좋은 집 사서 이사했다고 예쁜 소파사라고 돈보내주던 누나,
시어머니는 없지만, 시어머니 이상으로 챙겨주던 누나가 아프다. 눈물이 난다.
남편은 어머니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누나에게 같은 일이 반복될까 두려워한다.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