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오빠가 둘인 나는 오빠들이 먼저 결혼을 했기에, 신혼 여행을 다녀오면 우리 엄마가 오빠네 부부들에게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준비해서 차려준 걸 봤었다. 어디 음식 뿐인가
나도 모르는 관습은 왜 이리도 많던지 이제 시작하는 부부를 위해 엄마는 무언가 많이도 준비를 해서 챙겨주는 걸 봐왔다.
나도 나중에 결혼을 해서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가면 저런 걸 받겠구나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없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이미 많은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게 된 나는 시댁에 대한 기대감을 많이 저버린 상태였다. 다만, 신행 다녀온 부부가 예쁘게 한복을 입고 부모님께 절을 하고 우리가 사가는 선물을 아버님께 드리는 훈훈한 분위기 정도는 상상했던 거 같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시댁으로 출발하려는 찰라에 아버님께 드린 전화 한통으로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아버님과 통화를 한 남편은 갑자기 마트에 좀 다녀와야 겠다고 하더니 부랴부랴 무언가를 사서 들고 왔다.
"그게 뭐야?"
"아. . 아... 아빠가 쌀하고 고추장 좀 사오라네..."
그리스에서 사온 와인이며 여러가지 선물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서른살의 어린(?) 신부인 나는 집에 쌀과 고추장같은 기본 생필품이 떨어진 연로한 홀시아버지에 대한 걱정보다 신행 후의 들뜬 마음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서운할 뿐이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을 기대할 수 없는 집, 그렇다고 시아버지가 밥상을 차려줄 거라고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데 . . . , '우리 엄마라면 음식 잔뜩 준비해놓고 기다릴텐데...' 속으로 이런 마음이 들면서 시댁과 친정의 비교가 시작되었다.
시댁에 도착하니 시아버지와 가까이 사는 시누이가 와 있었다. 친정엄마가 시킨대로 한복을 꺼내어 갈아 입고 남편과 잘 다녀왔다고 절을 하려고 했다. 시누이는 뭐하러 그렇게 거추장스럽게 하냐는 말을 했다. 안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행 다녀오고 먼 시댁까지 운전해서 오느라 피곤한 우리를 위한 시누이의 배려였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말이 서운했다. 뭐든 하지 말라는 시누이와 시댁의 분위기란...나를 졸지에 아주 지나치게 '형식'에 집착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시아버지도 절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으신지 자꾸 다른 일에 집중을 하셨다. 그래도 새신부인 나는 친정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할 것 같았고, 우리 친정집에서 본대로, 신행 다녀온 올케언니들이 예쁜 한복을 입고 절하던 모습처럼 나도 하고 싶었다. 나는 꾸역꾸역 한복을 갈아 입고 서 있었고, 남편은 아버님을 몇번이고 불러서 거의 반강제적으로 절을 받게(?)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른 살 이제 막 결혼한 새신부인 나는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었다. 서운했다. 자꾸 서운했다.
그러나 그 날의 서운함은 서막에 불과했음을 결혼생활의 연식이 늘면서 알았다. 결혼 생활 중의 모든 이벤트(임신, 출산, 아이 백일, 돌잔치, 남편승진, 이사) 때마다 나는 심각하다 싶을 정도로 서운함을 느껴야 했고, 남편과 싸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떤 날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버님은 막둥이가 결혼 한 건 아시지? 내가 며느리라는 거 아시겠지?"
아버님이 떠나고 나니 서운함도 느낄 사람이 없다. 남편과 싸울 일도 현저히 줄었다. 아버님이 안계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