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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Dec 23. 2021

우리 고민의 8할은 돈


"우리 고민의 8할은 돈"



유수진의 '부자언니 부자특강'의 첫장에 나오는 말이다. 공감의 하트를 100개쯤은 날려주면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아직도 우리는 돈 앞에 솔직하지 못하고 돈 앞에 괜찮은 척을 너무 많이 하고 살고 있다. 또한 돈 이야기를 대놓고 잘하는 사람은 굉장히 속물 취급하곤 한다.


  2012년 남편의 발령으로 광주에 오면서 우리는 신축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 신축, 테라스, 복층이라는 조건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신혼을 30년도 넘은 아주 작은 아파트(80년대 주공아파트, 엘베 없음)에서 시작했던 터라 무엇보다 신축이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새 집에 살아보고 싶었다. 조금 부족한 전세금은 전세 대출로 채우면서 그 집에 들어갔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우리가 빌라 전세살이를 시작한 지 1년을 겨우 넘긴 시점이었다. 그 빌라를 지은 건물주의 부도로 집이 경매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경매의 '경'자도 모르고 3살 4살 연년생 딸의 육아에 지쳐있던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자기 일 외에 부동산이나 실물경제에는 무지했던 공무원 남편은 우왕좌왕했다. 그 당시 그 문제는 인생 가장 큰 돈 위기였다. 이 돈을 날리면 우리는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신혼부터 진심으로 악착같이 모아  마련한 전세금을  날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 전세금 안에는 남편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남편에게 힘들 때 쓰라고 주셨다는 500만원도 있었고, 결혼직전 강사로 일하며 내가 번 돈 2000만원을 그냥 가져가라고 챙겨주신 친정엄마의 마음도 있었다. 김밥집에 가면 치즈김밥, 참치김밥은 비싸다고 생각하면서 아예 쳐다  보지도 않고 그냥 일반 김밥만 먹었다. 옷도 좋아하고 가방도 좋아하는 나이지만 무조건 안샀다!  남들 다 쓴다는 수입기저귀나 육아용품은 단 한개도 써본적 없다. 그렇게 모은 전세금이었다.

 

  그렇게 눈물나게 모아서 마련한 전세자금이 사라진다고?


  결국 건물은 경매로 넘어갔고 낙찰을 받았다(그 빌라는 다세대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아파트처럼 한집 한집이 매매가 가능한 형태였다.). 낙찰을 받았기에 일단 당장은 큰 손해가 없었다.


   그렇게 그 집을 떠안으면 우리 집이 생겨버렸다. 사실 소유까지 하고 싶었던 집은 아니었는데...광주 살이 3년 4년을 넘어가면서 광주에 새 아파트가 엄청나게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 빌라의  소유주가 되면서 아파트 청약을 하려 해도 점수가 낮아 청약은 넣는 족족 다 떨어졌다.  돈이 여유있게 있다면 맘에 드는 아파트를 그냥 한채 사고 말겠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스스로 위로하는 것,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래..



집은 사는 게(buy) 아니라 사는 거(live)야

      -유수진의 '부자 언니 부자 특강' 중에서



나도 이런 말을 수 없이 되뇌면서 괜찮은 척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마인드 컨트롤의 끝판왕을 달린 것 같다.



  그 사이 두 딸이 자랐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큰 딸은 3학년쯤 되니 자기 방을 갖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애처럼   남편도 자기만의 서재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이런 말 할 때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미웠다. 남들은 남편이 부동산에 눈이 밝아서 집도 척척 잘사준다드만, 너는 뭐 하냐?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목에 디스크가 터졌다. 목에서 시작한 디스크는 허리로 내려갔고, 무릎에 통증이 생겼다. 무릎안에  물이 찼다. 발가락까지 아프다 했다. 안구에 물이 차서 그걸 빼야 하는 이상한 증상도 생겼다. 유명하다는 병원과 의사는 다 찾아다니고 한 달 약 값만도 엄청난 상황, 디스크 환자는 숙이는 자세를 하면 안 된다며 무조건 눕기만 하는 남편.... 결국 육아휴직을 가장한 1년의 '휴직' (남편의 건강 스토리는 구구절절함. 다음에 자세히)


  나는 실질적으로 가장이 되어야 했다. 남편은 살아야 하니 오로지 자기 몸만 생각해 주는 것으로도 감사할 정도였다. 사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 당시에는 남편이 너무나 미웠다. 자기 몸 하나만 챙기는 이기적인 남편을 보면서 나는 두 딸도 잘 키워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다.


  자존심은 있어서 대 놓고 돈 없다는 소리도 못하겠고, 속물 소리는 듣지 않으면서 돈을 벌고 싶었다. 벌어야 했다. 그래야 내 딸이 갖고 싶다는 방을 만들어 줄 수 있고, 남편이 갖고 싶다는 서재도 만들어 줄 수 있다( 그 와중에 남편 생각도 은근 잘하는 나).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 작은 딸에게 여기저기 보내 줄 수도 있다. 뭐부터 시작 하지?

 

  내가 제일 잘하는 건 공부하는 것! 자기 계발로 성공한 사람들의 밑바탕에 깔린 독서! 일단 독서를 미친 듯이 했다. 독서와 자기계발로 성공한 스토리를 읽었고, 배움을 찾아 다녔다. 새벽 KTX를 타고 서울을 가는 길은 설레었고, 혼자 운전해서 가는 창원은 나를 가슴뛰게도 했다. 비교하면 끝도 없겠지만 내 깜냥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나는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게 3년 정도는 모터달렸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달렸다.


  복층집이라는 점을 이용해 휴직한 남편은 2층에서 쉬고 있었고, 1층에서 나는 과외와 그룹수업을 시작했다. 아름아름 소문이 났고, 집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늘었다. 그렇게 꽉 채워 2년을 집에서 수업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상가 공간을 얻어서 나의 독서교실을 오픈하였다.  밖으로 나오니  더 쉴 수가 없었다.  세상에 아침에 8시 30분에 문여는 학원이 있네~ 사람이 와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나는 나갔다. 그리고 읽었고 공부했고 준비했다. 그리고 오후에 아이들을 만났다. 밤 9시까지는 수업이 없어도 학원 불을 절대 꺼놓지도 않았다. 늘 불을 켜 놓았다. 몸이 집에 있어도  마음은 늘 학원에 있었다.  주말에도 나가서 공부하고 수업준비하고  한명의 아이도 최선을 다해 만났고, 정성을 다해 상담했다.  

  

 그 사이 건강을 회복한 남편은 복직을 했고 남편의 월급이 정상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의 수입은 늘기 시작했다. 둘이 일해서 버는 돈을 합산해서 월수입의 50%는 무조건 적금에 넣었다. 어떤 달은 70%를 적금에 넣기도 했다. 공무원 남편은 몇 달에 한 번씩 정근수당이 나오고 명절엔 보너스가 나오는데 그것도 거의 쓰지 않고 모았다. 정말 순진하게 공부만 하고 개미처럼 일만하며 무식하게 적금만 했다.


   재테크도 잘 몰랐기에 그냥 일단은 적금으로 돈이 모아져서 목돈이 되는 것만을 바랐다.  일단 우리 수중에 현금 1억을 만들면 그 다음부터는 점프가 될거라 생각했다. 통장에 8000만원쯤이  찍혔을 때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던 같다.


   중간에 수없이 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그건 생략하고..


 결국 우리는 작년 여름 아파트값이 미친듯이 상승하기 직전!  34평 1군 브랜드 아파트 매매에 성공했다. 큰딸과 작은딸의 방을 각각 만들어 주었고, 남편의 서재공간도 만들어주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무슨 몇백 몇십억 자산가인양 성공 스토리를 쓰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 그런 자산가도 아니고 부동산 부자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몇 백억 부자를 꿈꾸는 사람도 아니다. 말 그대로 나는 이시대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 워킹맘일 뿐이다.  다만 거기에 시련의 양념(?)을 뿌려보자면 남편은 좀 아팠고 돈이 조금 없었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내 힘으로 아파트를 한 채 사고 나니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기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40을 넘긴 지 3년 차이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내 나이는 마흔 넷이다.

이쯤되니 조금 알 것 같다(인생의 선배님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죄송). 인생은 정말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과 생각지도 못한 위기를  언제든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기가 꼭 위기는 아니더라는 것이다. 방법은 찾으면 나타나고, 노력하면 극복은 되고, 극복을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기고 더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부와 성공을 거머쥔 사람들에게 눈물로 가시밭길을 걸어온 고통의 시간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모습만 좇는다.
- 유수진 「부자 언니 부자 특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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