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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영 Nov 16. 2021

너에게서 내가 보여

-어린 날의 내가 작은 딸에게 오버랩 될 때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는 어쩜 그리도 나를 닮았는지... 첫째 아이와는 다르다. 첫째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남편을 참 많이 닮았다면 둘째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거의 나를 닮았다. 진짜 붕어빵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나를 닮은 작은 아이를 보면서 나는  매일 어린 날의 나를 본다.


  학교 끝나고 "엄마!"하고 크게 부르면서 들어오는 모습부터, 그 날 학교에서 시험이라도 봤다 하면 나에게 종알종알 수학은 몇점이고 영어는 몇점이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엄마! 저 수학학원 안다녀도 98점이면 정말 잘하는 거죠?"

"영어 시험 봤는데 100점 맞은 애가 세 명밖에 없는데요. 저 100점이에요. 저 정말 잘했죠?"

"엄마 저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칭찬 받았어요~"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중에 자기가 칭찬받은 일만을 쫙~ 늘어놓고 영어학원으로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입이 귀에 걸려서 칭찬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나는 너무 덤덤할 정도로  "그래"하고 만다. 그러며 아이가 되묻는다 "엄마는 제가 칭찬받았는데 기분이 별로 안좋아요?"


   내가 과한 리액션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아이의 그런 모습에 어린 시절 내가 자꾸 오버랩되어서이다.


   4남매의 셋째였던 나는 늘 칭찬과 인정에 목마른 아이였다. 그래서 뭐든 잘하려 했고 잘해내려 했다. 공부든 그림이든 뭐든(운동만 빼고). 나는 늘 야무져야 했다. 야무지게 해내야 칭찬을 받았던거 같다.  어린 시절 나는 학교가 끝나고 오면  집앞 대문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부터 할머니와 엄마를 부르며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이야기 하곤 했다. 그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내가 뭐를 잘해서 칭찬받고 상을 받았는지였다. 상장이라도 받은 날이면 목소리는 두 배로 커져서 상장을 흔들며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딸이어서 오빠들에게 가려진 듯한 나의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었고, 막내가 누리는 무한한 사랑을 나도 한번 받아보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늘 형제들 사이에서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내 몫을 차지하고, 나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 매 순간 최선과 노력을 다했던 거 같다.  그런 내가 마흔을 넘기고서야  스스로에게 말해주게 되었다.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라고... .



  

   그런데 나를 닮은 나의 둘째 딸에게서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을 자꾸 보게된다. 늘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뭘해도 칭찬받는 언니에게 자기가 가려졌다고 느끼는 걸까? 우리 둘째의 마음 속에 뭔가 부족한 게 있을까?

 엄마가 되어보니 내 아이가 뭘 잘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칭찬받고 오지 않아도 그냥 예쁜데, 나의 둘째는 어린 날의 나처럼 뭐든 잘하려고 한다.


"수원아! 너무 잘하려고 칭찬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너무 잘하려고만 하면  가끔 벅찰 때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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