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키우는 순간 순간, 독서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 순간에도 나는 수없이 갈등한다. 원칙과 허용 사이에서, 훈육과 칭찬 사이에서. 또 나의 위치와 역할 사이에서.
엄마 역할을 얼마쯤 더하면 그 갈등이 사라질까? 선생 역할을 얼마나 더 하면 그 갈등이 사라질까?
과연 사라지기는 할까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다만 한해 한해 경험 햇수가 쌓여가고 사례가 늘어갈수록 갈등하는 시간이 다소 단축되는 느낌 정도이다.
그게 자신의 의무였다면 매슈는 허락하고 싶은 마음과
교육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게 매슈는 마음껏 마릴라의 말처럼
'앤을 버릇 없이' 만들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가끔씩 조그만 '칭찬'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빨간 머리 앤 >중에서-
올해 6학년이 되는 완이는 꼬꼬마 초등 2학년때부터 독서교실에 오기 시작했다. 네살 터울의 형과 완이는 형제만 있는 집에서는 딸같은 막내아들이었다. 감정 표현이 딸처럼 섬세하고 애교가 많았다. 딸이 없는 엄마에게 딸 못지 않게 참 사랑스럽겠다 싶었다. 그런데 엄마가 의류매장을 하다보니 쉬는 날이 없고, 늘 밤늦게 끝나는 일의 특성상 엄마와의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 완이는 독서교실에 오면 나에게 종알종알 이야기를 참 잘했다.
그러다.. 완이가 5학년에 올라갈 즈음해서 완이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하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완이 형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완이 형 역시 6년째 독서교실을 다니고 있다). 많이 안타까웠다. 물론 부부가 이혼을 결정할 때는 수없이 많은 고민과 갈등과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에 남는 상처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는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었다. 완이 형은 부모님이 이혼을 선택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결국 부모들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완이는 조금 더 어려서인지 그런 표현은 없었지만, 완이가 어떤 마음들을 내비칠지 늘 주시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완이는 아빠와 생활하게 되었는데,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게 되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매주 읽어야 하는 책들을 잘 챙겨서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독서교실의 경우 매월 읽는 도서목록들을 매월 시작 일주일 전에 엄마들에게 보내고 있다. 그러면 엄마들이 그 책을 미리 준비해주고 아이들이 읽어오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3년을 아이가 꾸준히 책을 읽어 왔는데, 엄마가 곁(한 집에 살지 않지만, 같은 동네에 살고 계심)에 없다보니 그게 잘 되지 않는 게 눈에 보였다.
완이가 책을 싫어한다거나하는 아이도 전혀 아니다(그렇다면 그렇게 오래 독서교실에 오지도 않는다). 아이는 책을 읽고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아이였고, 무엇보다 그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하는 걸 누구보다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책이 준비되지 않는 상황들은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완이에게는 책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완아~ 이 책 우리 다음주에 읽을 책이니까, 읽고 가져와~ 선생님도 계속 보는 책이고 또 다른 친구들이 빌려가기도 하니까"
"네"
처음엔 빌려주는 책도 잘 가져오던 녀석이 한 권 두권 책이 밀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이주일이 되고 어떤 책은 한달이 넘어갔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의도적으로 책을 안가져온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기에 늘 아이에게 잘 타일렀다. 그리고 사실 한 두권쯤 아이가 안가져온다고 해도 1~2만원 주고 책이야 다시 사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문득 그렇게 자꾸 아이에게 괜찮다고 허락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건 내 물건이 아닌 것이고, 누군가에게 빌린 것이라면 잘 쓰고 제 때 돌려주는 것이라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도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내가 아주 작은 여린 마음으로 아이에게 너무 기준없이 대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완이에게 말했다.
"완아! 완이가 책을 두 권 안가져오면 선생님은 사실 다시 사도 상관은 없어. 그런데 있잖아. 선생님이 책을 엄청 사랑하는 거 알지? 그 책은 오래된 책이고, 선생님은 오래된 책을 더 좋아해. 그리고 두고 두고 보고 다른 친구들 동생들에게도 빌려주고 싶어. 그러니까 다음주에 꼭 가져오면 좋겠어."
"제가 자꾸 까먹어서 죄송해요.. . . 아! 선생님! 그럼 제가 알람을 맞춰놓을까요?"
"아! 그래! 알람을 맞추자! 왜 우리가 알람 생각을 못했지? 지금 선생님이랑 맞추자! 알람 울리면 그 책들 가방에 꼭 챙겨 넣어~~"
"네!"
그렇게 완이는 알람을 맞췄고 그 다음 주에 밀린 책 두권을 챙겨서 왔다. 그리고 나는 또 기분 좋게 완이에게 다음 주 책을 내어 주었다.
완이 엄마가 그랬다. 완이가 사심( 독서교실 이름이 사심가득한 독서교실이어서 동네에서는 다들 사심이라고 부른다) 다니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사심가서 책보고 이야기 하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그런 완이에게 나는 책선생도 되어야 하고, 책엄마도 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갈등도 하고 시행착오도 하는 것이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