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카톡 투척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며칠 전.
완연한 봄인 듯했으나 꽤 쌀쌀하다.
비가 오니 쎈치해진다.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와이프에게 카톡이 하나 온다.
늘 그렇다.
와이프의 카톡을 두 시간 이상 모른척하면 생사확인차 카톡이 하나 더 날아온다.
엥. 약?
아침에 퇴근할 때 약 좀 타달라고 했었는데, 깜빡하고 있었다.
잠깐, 근데 이걸 내가 꼭 해야 하는 건가?
"원씽" 책에서 '오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를 강조했었는데.
이건 내가 오늘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가 아닌걸?
슬쩍 한번 개겨본다.
카톡방의 1이 없어지고 몇 십 분의 시간이 지난다. 읽씹이다.
'아 이거 그냥 내가 하라는 거네.'
5시 좀 넘어서 술 약속이 있었기에 골든타임은 10분. 황급히 와이프가 이야기 한 병원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정확한 데이터가 검색되지 않는다. ESTJ인 나로서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보통 이 정도로 검색하면 길 찾기까지 다 나와야 하거늘.
네이버 길 찾기, 카카오맵, 내비게이션까지 모두 검색해도 해당 병원이 나오지 않는다.
얘는 뭔 병원에 갔던거여 진짜.
일단 평소 와이프가 거닐만한 길을 걸어본다. 더불어 평소 와이프가 좋아하는 노래도 틀어본다.
와이프 갬성에 빙의가 되어본다.
빙의는 둘째 치고,
오늘 비 올 것 같다고 와이프에게 접이식 우산 하나 놓고 가라 했는데 말은 참 잘 듣는다.
진짜 접혀서 안 펴지는 우산을 놓고 갔다. 그냥 비를 맞을까 고민했지만 내 머리카락은 소중하다.
진짜 창피해 죽겠다. 우산 주워쓰는 애 같다.
뭐 어쨌든, 이런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고 와이프가 "XX이비인후과"로 착각했을만한 장소에 들러본다.
여기다.
개떡 같은 우산 들고 비란 비는 다 맞고 미션을 클리어했는데 아직도 대꾸가 없다.
드디어 답장이 온다.
꼭 우산을 놓고 가도 왜 저런 우산을 놓고 갔을까.
왜 있지도 않은 "XX이비인후과"에 가서 약을 타오라고 할까. 그럼 얘는 도대체 어디 병원에 갔다 왔던 걸까. 미션하나 툭 던져주고 왜 잠수 타버리는 걸까. 내가 미션을 성공한 것보다 김 부장님이 태워다 주는 게 더욱 중요한 것이었을까.
탁상행정의 끝판왕.
비를 조금 맞아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한다. 이제는 내 차례인가.
나도 약 좀 먹어야겠다.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다음 시리즈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