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둘이 갔다 넷이 되어 온 여행
작년 가을,
우리 부부는 경주 여행을 떠나게 된다.
마침 직장 동료 결혼식도 있었고.
경주는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이다.
조상님께 죄송하네. 나 경주 김 씨인데.
나름 경주 여행계획을 짜본다.
와이프는 여전히 옆에서 발을 까딱 까딱 경주에서 입을 옷만을 물색한다.
그렇게 완성된 경주 여행 계획.
자, 이제 떠나볼까.
고즈넉한 경주에 도착하니, 마음이 몽글해진다.
시골길 냄새, 산인지 언덕인지 모를 낮은 산들, 귀 끝을 스쳐가는 선선한 바람, 고궁의 BGM까지.
즉흥적으로 시를 한편 적어 와이프에게 나긋하게 읊어준다. 와이프도 눈을 감고 감상한다.
푸른 하늘 아래, 푸른 나의 주식계좌.
날씨는 선선한데, 계좌는 싸늘하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내 주식은 익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숙이네.
대릉원의 저 무덤이
혹시 나의 무덤일까.
경주 최고의 간식거리 십원빵.
경주 김 씨 최고의 놀림거리 동전주.
개잡주.
(상병)시인 김북꿈
분명 와이프가 살포시 눈을 감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안 난다.
경주 김 씨 조상님들이 잠깐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 맞아서 기절했었나 보다.
저녁에는 와인을 한잔 하며 와이프의 예쁜 얼굴에 잠시 취해본다. 오늘따라 유난히 와이프가 예쁘다.
"여보. 경주 김 씨의 정기를 받아 오늘인 것 같아."
슬쩍 2세 계획을 세워본다.
와이프는 수줍게 웃어넘긴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에 돌아간다.
아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를 한다. 이틑 날 계획을 실천해야 하기 때문.
준비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장모님에게 안부전화가 온다. 장인어른과 둘이 삼척 여행을 가셨다고.
나도 나이 들어서 애들 떼놓고 와이프와 둘이서 여행 다니는 그런 부부가 되고 싶다.
어쨌든, 우리는 바쁘다.
그렇게 숙소에서 나와서 정신 차려보니.
강원도 삼척. 얼척이 없네.
얘 나랑 있으면 뭔 일 날 것 같으니까 엄마 아빠한테 도망가네.
ESTJ인 남편, INFP인 와이프.
J남편이 계획을 아무리 세워도 소용없다. 누구의 권력이 더 센가 가 중요하지.
어쨌든,
둘이 갔다가 장인어른 장모님까지 넷이 되어 온 여행.
끝.
#2세계획 #허탕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