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와이프의 숨겨진 재능
저번 주말 와이프는 회사 워크숍을 다녀왔다.
1박 2일로. 와이프 회사 분들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본론은 아니고.
워크숍에 떠나기 전, 와이프는 머리를 다듬기 위해 미장원에 다녀온다.
머리를 자르고 온 와이프는 어김없이 나에게 어떤지 물어본다. 나는 준비한 대답을 기계적으로 내놓는다.
"나 머리 자르니까 어때?"
예쁘네. 어려졌어 고등학생 같아.
그 뒤로 뫼비우스의 질문 릴레이가 시작된다.
"머리가 너무 짧아졌나?"
아니 안 짧아. 보기 딱 좋아
"그럼 머리 자른 티가 너무 안 나나?"
아니야. 짧지는 않아도 많이 단정해진 느낌이 들어.
"단정해? 머리가 너무 일자지? 다시 가서 층 좀 내야하나?"
일자는 아닌 거 같은데. 약간의 층은 있어. 하나, 둘, 셋, 3층정도는 되네.
"그래도 여기 끝에만 살짝 쳐서 층 내는 게 나을 것 같지 않아?"
…
엄마가 또 보고 싶다. 결혼하고 나서 유독 엄마 보고 싶어 지는 날이 많아진 것 같다.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킨다. 맨 정신에 못 있겠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어제 맥주를 조금 도핑하고 자서 그런지 유독 몸이 무겁다.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각사각사각 삭삭삭 -
아니 이게 뭔 소리여.
깜짝 놀라서 반쯤 떠진 눈으로 와이프를 바라본다.
출근준비 하다가 미용실을 오픈하신다. 그런데 심지어 기술이 장난이 아니다.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오...." 하며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얘 회사 안 다녀도 뭐든 잘하고 살겠네.
약 10분간의 가위질 끝에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었는지 와이프는 출근에 성공한다.
이건 치우고 가.
그리고 점심즈음 카톡 하나가 도착한다.
너 그러다 회사 짤려..
당신에겐 그릿이 있나요?
내 와이프는 있어요.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