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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Nov 10. 2023

국밥을 담은 용기? 용기를 담은 국밥!

자존감 한 그릇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내가 오늘 먹은 국밥 한 그릇은, 단순한 국밥이 아닌 자존감 한 그릇이었다.


.

.

.




어제 오랜만에 서울에서 동기모임이 있었다.



2016년 입사 동기. 같은 부서 내 17명의 동기지만 이제 처음 발령받았던 부서에 남아 있는 동기는 7명 남짓. 나머지는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나 역시 작년에 대전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동기들 모두 여전히 각자의 위치에서 가정을 이루고 정말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부어라! 마셔라!"

"아 예전에 우리 신입 때 북꿈이 어쩌고저쩌고"

"북꿈이 요즘 대전에서 어떻누. 야 그래도 우리 쪽 부서가 훨씬 낫지. 너도 일로 와.. 딸꾹"

"아후 @!*%( 그뤠도 우리 막둥이 북꾸미.. 집 멀어서 우째 가루ㅕ고 구뤄냐.."



하나 둘 혀가 꼬부라지기 시작한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니 기분이 좋은가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고 하지 않나. 이 형들, 누나들 덕에 총각시절 나의 서울 생활은 언제나 빛났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KTX 막차 안.



KTX의 냄새는 언제나 포근하다. 약 3년간 대전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며 참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그 시절이 조금 그립기도 하다. 어쩌면 서울이라는 바쁜 도시가 그리운 것일지도.



'내가 대전으로 부서 이동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일까'



나 빼고 다들 좋은 부서에서 잘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한 선택이지만 서울 생활을 하다 대전에 내려오니 뭔가 좌천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원래는 내가 동기들 중 가장 어리고 성적도 좋은 엘리트였는데.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왠지 작아 보인다. 이내 스르륵 눈이 감긴다.




끼이이이익.

열차의 요란한 쇠바퀴 소리가 나를 깨운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대전, 대전역입니다. 내리실 때는 두고 내리는..'

눈 떠보니 대전역이다.



새벽 한 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간다. 와이프가 곤히 자고 있다. 저 놈의 아빠상어 애착인형은 언제까지 끌어안고 잘 건 지. 오늘도 아빠상어는 와이프에게 헤드락을 당하며 긴 밤을 보내고 있다.




으.. 술 안깨..



오랜만에 한 과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경제 라이브 방송을 틀어놓고 침구정리와 집안 청소를 끝내고 책을 읽었을 텐데..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 아직도 내장 곳곳에 알코올이 가득하다.



해장을 위해 불냉면을 시켰지만 두 젓가락 먹고 불냉면은 음식물 쓰레기가 되었다. 20대엔 밤새 술 먹고 놀아도 멀쩡했는데 30대가 되니 확실히 다르다. 회복이 더디다. 몸뚱아리는 정말 건강한 줄 알았는데 나이가 먹고 있긴 한가보다.



입에서는 알코올성 똥내가 가시질 않는다. 양치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다. 있는 힘껏 치약을 짠 칫솔을 입에 넣고 거울을 본다. 날 것을 넘어 상해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기름져있는 덥수룩한 머리, 지문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안경, 듬성듬성 자라 있는 멋대가리 없는 수염까지. 못나도 이렇게 못 날리 없다.



이렇게 자세히 마주하고 나니 나이가 들긴 들었다. 10대 20대에는 나름 얼굴에 만족하며 살았었는데 지금은 왠 30대 아재의 모습만이 남아있다.




야간근무 출근길.



어제 차를 대전역에 놓고 온 관계로 오늘은 버스 타고 출근이다. 버스에 올라타 자기 계발 관련 유튜브를 듣는다. 유튜브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신사아님당 유튜버의 말이 한 귀로 다시 흘러나가고 있다.



그러다 뭔지 모를 무기력함이 순식간에 나를 감싼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맞는 건가'



평소 강하고 긍정적인 멘탈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아직도 강한 중력의 술기운이 나를 저 아래 어두운 곳 어딘가로 잡아당기는 것 인가.



안 되겠다. 출근하기 전에 내 30년 단골 국밥집에 가서 제대로 해장이나 하고 가야지.



재잘재잘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유튜브를 꺼버린다. 그냥 세상 사람들 소음이나 들으며 출근하련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혼자 왔어요"




30년 단골 국밥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가장 안쪽 구석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힘없이 앉는다. 하필 또 앞에 거울이 있다. 흰색 반팔에 검은색 후리스. 오늘따라 옷도 정말 후줄근하게 입고 왔구만.



밥 먹다 거울을 한번 본다. 이렇게 보니 젊은 시절의 아빠가 앉아있는 것 같다. 닮기도 참 닮았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아빠도 내 나이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을까. 매 순간이 오늘의 나처럼 불안정하지는 않았을까.



도를 넘은 쎈치함에 컬러풀한 이 세상이 흑백세상으로 변해있다.

'오늘 정말 쎈치하군, 또 쏘주가 땡기네'



그때, 30년 동안 나를 알고 지낸 국밥집 사장님이 나의 흑백세상에 끼어든다.

"오늘은 혼자 왔네, 왜 혼자 왔어 무슨 일 없지~?"



오늘따라 내가 어둡긴 했나 보다.

"아 야간 출근하는 길인데 배고파서 밥 좀 먹고 가려구요"

오늘 하루 중 가장 많은 말을 했다.



"늦겠다. 언능 밥 먹고 부족하면 말해 많이 먹고 가."



국밥 맛도 제대로 못 느끼고 출근을 위해 허겁지겁 계산을 하려는데.

"아들은 나이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것 같아. 아빠한테 이야기 들어보면 늘 성실하게 사는 것 같고. 진짜로 내 아들이나 사위 삼고 싶다니까"



참 별거 아닌 말인데

분명 그냥 인사치레일 텐데



그 순간 나의 흑백 세상이 와장창 깨지며 무지갯빛 세상으로 돌아온다.



바닥 쳤던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의구심은 사장님 말 한마디에 삶에 대한 용기로 다시 한번 바뀌게 되었다.



사장님은 국밥을 용기에 담아준 것이 아닌, 용기를 국밥에 담아주었던 것이다. 은인 같은 사장님에게 이제는 다시 씩씩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목소리를 조금 다듬고.



큼큼.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내가 오늘 먹은 국밥 한 그릇은, 단순한 국밥이 아닌 자존감 한 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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