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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꿈이네 May 17. 2024

나는야 설거지 전문가(Ep. 18)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회사 시험을 앞두고 우리는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

기대보다는 걱정이 조금 더 컸던 여행. 



여행에서 돌아오고 이틀 뒤 시험이기 때문에 여행 내내 혼자 독방에 들어가거나 카페에 가서 짬짬이 공부를 하곤 했다.



한 번은 다들 마사지받을 때 혼자 맥주 마시면서 공부하다가 맥주를 다섯 병 깐 적도 있다. 



그런데 진짜 신기했던 건, 그렇게 해롱해롱 외웠던 것들이 암기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는 것. 



역시 천재는 알코올에서 탄생하는 것인가.





태국에서 또 하나 득템한 것이 있다면 바로 태국 유명 술인 리젠시. 



평소 위스키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왠지 태국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하니 몇 병 쟁여놔야 할 것 같아 장바구니에 듬뿍 담았다. 



이제는 와이프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늘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는 마인드로 쇼핑해왔을 와이프니까. 





지금도 옆에서..





성공적인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틀 뒤 대망의 시험일이 밝았다. 



시험 잘 보고 오라는 와이프의 응원에 복잡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응원해 주고 있는 사람이 와이프니까. 



늘 나를 격려해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와이프. 최근에는 밥까지 떠먹여 주려고 하는데 점점 기분이 이상해진다. 



얘 혹시 나를 금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어쨌든, 시험 보러 가는 열차 안에서 와이프에게 셀카 한 장을 투척해 본다. 



"시험 잘 보고 올게. 내가 떨어지면 합격할 사람이 없어. 나는 무조건 합격해."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와이프에게 호언장담을 해본다. 



사실 조금 떨리긴 했지만 티를 낼 순 없다. 내가 티를 내면 나보다 더 개 떨듯 떨고 있을 와이프라서. 



시험장에 도착하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험 시작 10분 만에 나는 예감했다.







합격을.





아직 퇴근하지 않은 와이프에게 합격 사실을 알린다.




역시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와이프. 오늘의 합격 파티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사 온 리젠시를 먹어보기로.





간단하게 밖에서 고기를 먹고 집에 들어와 리젠시를 세팅해 본다. 



위스키 종류도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티비에서 본 것들로 세팅을 해본다. 



얼음컵, 토닉워터, 은은한 조명.

허세 사진도 하나 찍어주고.





와이프와 일단 언더락으로 한 잔 마셔본다. 



웨에엑- 

와이프는 본인은 절대 못 먹겠다며 뒤로 빠진다. 



그러나 나 김북꿈. 

이대로 질 수 없다. 맛을 음미해 본다. 




‘음. 다른 위스키들에 비해 조금 부드러운 것 같군. 살짝 과일향 같은 것도 나는 것 같고. 이런 술에는 어떤 안주가 어울릴까.. 환승연애 같은 거 보면 초콜릿이나 견과류 같은 거랑 많이 먹던데..’



"여보, 우리 초콜릿이나 견과류 같은 거 있어?"


"응, 저기 식탁 위에 아몬드 초콜릿이랑 말린 은행 있어. 아몬드 초콜릿은 몇 개 없을 걸? 내가 좀 먹었어."



곧장 아몬드 초콜릿과 말린 은행을 가져와 다시 한번 제대로 리젠시의 맛을 음미해 본다. 





크으.. 합격의 맛. 



오늘따라 위스키가 달다. 나 위스키랑 잘 맞는 사람이었나.



오도독. 오도독. 



초콜릿 향이 가미된 아몬드. 

위스키랑 찰떡인듯하다. 계속해서 손이 간다. 



벌써 두 개밖에 안 남았다. 




취기도 살짝 오르고, 오늘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와이프도 오늘따라 조용하다. 그동안 바쁜 일정에 힘들었을 나를 배려해 주는 듯하다. 



이 시점에서 와이프는 조용히 잠들어줬으면 좋겠다. 혼자서 영화나 보다가 잠들게.



그때, 티비 불빛이 갑자기 환해진다. 

영화에서 아침이 밝았나 보다. 



번쩍- 



남은 아몬드 초콜릿의 개수를 확인해 본다. 

다행히 와이프가 뺏어 먹진 않았군. 




그런데 반짝거리는 비닐 안에 무언가 들어있다. 

자세히 초콜릿을 확인해 본다.







이게 초콜릿 향 아몬드가 아니고 원래는 초콜릿이었던 거네.




그럼 내가 먹은 건.. 






씨바

내가 먹은 건 와이프가 초콜릿만 빨아먹고 뱉어놓은 아몬드였네. 




조용히 뒤를 돌아 와이프의 표정을 살펴본다. 





와 얘는 알고서 그냥 지켜만 보고 있던 거구나. 

또 당했다.



나는야 설거지 전문가.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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