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회사 시험을 앞두고 우리는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
기대보다는 걱정이 조금 더 컸던 여행.
여행에서 돌아오고 이틀 뒤 시험이기 때문에 여행 내내 혼자 독방에 들어가거나 카페에 가서 짬짬이 공부를 하곤 했다.
한 번은 다들 마사지받을 때 혼자 맥주 마시면서 공부하다가 맥주를 다섯 병 깐 적도 있다.
그런데 진짜 신기했던 건, 그렇게 해롱해롱 외웠던 것들이 암기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는 것.
역시 천재는 알코올에서 탄생하는 것인가.
태국에서 또 하나 득템한 것이 있다면 바로 태국 유명 술인 리젠시.
평소 위스키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왠지 태국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하니 몇 병 쟁여놔야 할 것 같아 장바구니에 듬뿍 담았다.
이제는 와이프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늘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는 마인드로 쇼핑해왔을 와이프니까.
성공적인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이틀 뒤 대망의 시험일이 밝았다.
시험 잘 보고 오라는 와이프의 응원에 복잡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응원해 주고 있는 사람이 와이프니까.
늘 나를 격려해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와이프. 최근에는 밥까지 떠먹여 주려고 하는데 점점 기분이 이상해진다.
얘 혹시 나를 금쪽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어쨌든, 시험 보러 가는 열차 안에서 와이프에게 셀카 한 장을 투척해 본다.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와이프에게 호언장담을 해본다.
사실 조금 떨리긴 했지만 티를 낼 순 없다. 내가 티를 내면 나보다 더 개 떨듯 떨고 있을 와이프라서.
시험장에 도착하고,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험 시작 10분 만에 나는 예감했다.
아직 퇴근하지 않은 와이프에게 합격 사실을 알린다.
역시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와이프. 오늘의 합격 파티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사 온 리젠시를 먹어보기로.
간단하게 밖에서 고기를 먹고 집에 들어와 리젠시를 세팅해 본다.
위스키 종류도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티비에서 본 것들로 세팅을 해본다.
얼음컵, 토닉워터, 은은한 조명.
허세 사진도 하나 찍어주고.
와이프와 일단 언더락으로 한 잔 마셔본다.
웨에엑-
와이프는 본인은 절대 못 먹겠다며 뒤로 빠진다.
그러나 나 김북꿈.
이대로 질 수 없다. 맛을 음미해 본다.
‘음. 다른 위스키들에 비해 조금 부드러운 것 같군. 살짝 과일향 같은 것도 나는 것 같고. 이런 술에는 어떤 안주가 어울릴까.. 환승연애 같은 거 보면 초콜릿이나 견과류 같은 거랑 많이 먹던데..’
"응, 저기 식탁 위에 아몬드 초콜릿이랑 말린 은행 있어. 아몬드 초콜릿은 몇 개 없을 걸? 내가 좀 먹었어."
곧장 아몬드 초콜릿과 말린 은행을 가져와 다시 한번 제대로 리젠시의 맛을 음미해 본다.
오늘따라 위스키가 달다. 나 위스키랑 잘 맞는 사람이었나.
초콜릿 향이 가미된 아몬드.
위스키랑 찰떡인듯하다. 계속해서 손이 간다.
벌써 두 개밖에 안 남았다.
취기도 살짝 오르고, 오늘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와이프도 오늘따라 조용하다. 그동안 바쁜 일정에 힘들었을 나를 배려해 주는 듯하다.
이 시점에서 와이프는 조용히 잠들어줬으면 좋겠다. 혼자서 영화나 보다가 잠들게.
그때, 티비 불빛이 갑자기 환해진다.
영화에서 아침이 밝았나 보다.
남은 아몬드 초콜릿의 개수를 확인해 본다.
다행히 와이프가 뺏어 먹진 않았군.
그런데 반짝거리는 비닐 안에 무언가 들어있다.
자세히 초콜릿을 확인해 본다.
이게 초콜릿 향 아몬드가 아니고 원래는 초콜릿이었던 거네.
그럼 내가 먹은 건..
내가 먹은 건 와이프가 초콜릿만 빨아먹고 뱉어놓은 아몬드였네.
조용히 뒤를 돌아 와이프의 표정을 살펴본다.
와 얘는 알고서 그냥 지켜만 보고 있던 거구나.
또 당했다.
정말이지, 와이프는 알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