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이 이렇게 길 줄이야
전임교수의 직무는 공무원 신규임용 예정자와 장기 교육생을 대상으로 교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핵심이다. 신규자 과정을 예로 들면, 민원실무, 예산실무, 공직가치관 강의가 편성되었다. 인재개발원에서는 신규 임용예정자를 대상으로 3주간 교육하고, 2주간 준비 과정을 계속 반복된다.
나는 지난 1월 중순에 전임교수직에 임용되었다. 한 달 정도 적응과 준비기간을 거쳐 2월부터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지 않는다> (RHK) 발간 후, 매월 한두 번 정도 강연을 해 오던 터라 학생들 앞에 강연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니었다. 막상 실전에 들어가 보니 강사로서 나의 실체가 드러났다.
첫 번째 문제는 강사 자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통의 부족'이다. 소통이 부족하다,라는 문장을 다르게 표현하면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인쇄된 교재의 내용을 요약하고 나의 실무 경험을 살려 만든 PPT 내용을 전달하는 데 치중했다. 동영상 자료도 세 편 정도 편집하여 PPT에 담았다. 유튜브 영상을 게시하면서 익힌 편집 기술이 도움이 되었다. 교육용 동영상은 별도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를 감시받는 일도 없어서 편하게 작업했다.
'민원 1회 방문 처리제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리빙: 어떤 인생>을 편집하여 보여줬다. 영화 초반부에 주민 몇 명이 공터를 어린이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 런던시청의 여러 부서(공원과, 환경과, 공공사업과 등)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있다. 모두 자기 부서 소관이 아니라고 미뤘다. 민원 1회 방문 처리제도의 필요성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주민등록제도를 설명할 때는 영화 <실미도>(2003)를 편집하여 설명했다. 북파침투 훈련을 전설의 684부대 이야기다.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설경구(강인찬 역)가 안성기(최재헌 역)를 향해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짤이 유명하다. 훈련을 담당하는 기간병이 반기를 든 무리들에게 '너희들은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에 이미 죽은 목숨이야'라는 말하는 장면이 있다. 주민등록제도의 중요성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대목이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구성했다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시들했다. 밍밍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나도 알고 학생도 알았다. 학생이 만족하는 강의는 한 시간에 두세 번은 웃음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만들지 못했다.
강사와 학생 사이의 분위기를 말랑하게 해 줄 강연자료가 필요하다. 좀 더 세련된 동영상 자료를 교재에 포함해 봐야겠다. 강의 중간에 대답이 쉬운 가벼운 질문을 던지고 받는 식의 스킬도 필요하다. 내가 타고난 기질은 아니지만 훈련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두 번째, 강의 시간에 대한 감각을 가지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 나는 세 시간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 중간에 10분 정도 휴식시간을 가지기는 했지만. 순전히 나 혼자 나머지 시간을 오디오로 채워야 한다. 초보자로서는 곤혹스러웠다. 내가 쓴 책 이야기를 하라면 세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겠지만 교과목은 달랐다.
민원실무 과목의 경우 ppt를 53장을 작성했지만 실제로 강연을 해보니 많이 부족했다. 1시간 강연을 마치고 살펴보니 ppt의 반을 이미 넘겼었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강의를 준비할 때 이야기 하려고 했던 내용이 실제 강의에서는 빼먹는 항목들이 많았다. 달달 외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공직가치 강의를 할 때는 시간을 메우기 위한 시도를 해보았다.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가치관을 알아보기 위해 '이키가이(삶의 가치)' 밴다이그램을 그려보게 했다. 5분 정도 시간을 주고 그려보고 설명을 조금 붙이고 다음 내용으로 넘어갔다. 내게 소통의 기술이 있었다면 이 시간에 학생들과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3월에 입교하는 신규 임용 예정자 강의를 할 때는 일단 PPT 화면 수를 늘려야겠다. 적어도 70장 정도 만들고 영상도 더 많이 찾아서 넣겠다. 그 정도 준비를 해야 강연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미안하지 않겠다.
이번 강연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안다고 해서 모두 전달할 수는 없다는 것을. 더 나아가 학생과 소통을 잘하기는 더더욱 힘들다는 것을. 문제점을 알고 대처방안까지 나왔으니, 3월에 다시 시도해 보자. 3월 신규자 수료식을 마치고 이 글을 보자.
나는 충분히 잘할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