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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y 29. 2022

우블에 등장한 놀라운 배우

마사 베크의 <아담을 기다리며>

늘 그랬듯이 소품처럼 쓰이다가 사라지겠지. 어눌하게 말 몇 마디하고 배경처럼 비켜나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영옥(한지민)의 쌍둥이 언니로 등장한 영희(정은혜)는 <우리들의 블루스>(이하 우블, tvN 주말 드라마)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그녀가 등장한 14회와 15회에서는 그랬습니다.    


영희는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면서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보냅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고 비행기에 혼자 탑승해서 동생이 있는 제주까지 갔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하고 교감했습니다. 보통의 여자배우와 똑같습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정은혜 배우 이야기입니다. 


정은혜 배우가 화면에 얼굴을 드러냈을 때, 아내는 일반 배우가 다운증후군을 연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오아시스>(2002)에서 문소리 배우가 연기했던 장애인 역할을 언급하면서 충분히 진짜처럼 연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난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연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딸이 검색을 해보더니만 내 말이 맞다고 하였습니다. 진짜가 나타난 것입니다.


지난 주(5월 22일)에 본 드라마의 화면은 일주일 내내 제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저는 만나는 사람에게 <우블> 이야기를 했습니다. 드라마를 쓴 노희경 작가도 대단하고 자연스럽게 살려낸 연출자와 주변 배우자들도 대단하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실제로 노희경 작가는 캐리커쳐 화가인 정은혜와 1년 동안 교제하면서 그녀의 성품을 작품에 녹여내었다고 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운증후군 환자를 드라마의 배경으로, 소품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중증 장애인이 등장한 영상물의 문법은 늘 같았습니다. 환자의 모자란 점만 부각되고 거기에 얄팍한 스토리를 입혔습니다. 다운증후군 환자에 대한 인식은 편견을 조장하고 불평등한 대우로 이어졌습니다.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입니다. 


내가 이 드라마를 대단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중증 장애를 가진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장애라는 이유로 사람 앞에 나서지 못하는 당사자와 그 가족에게 자긍심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드라마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장애인을 볼 때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를, 장애인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몇 년 전 읽은 책 중에서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부부의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마사 베크의 <아담을 기다리며>


"제가 듣기론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들도..." 나는 적당한 말을 찾느라 우물거렸다. "그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던데"


기저귀도 떼지 못한 딸아이를 둔 대학원생 부부, 마사와 존이 둘째 아이를 가진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원 수업을 듣는 중에 학위논문을 써야 했으며, 마사는 강의를 맡았고 존은 경영컨설턴트로서 아시아를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더 있었습니다. 양수검사 결과 태아가 다운증후군을 가졌다는 통보를 받은 마사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간호사에게 묻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는지.


  이 책은 '하나를 이루고 나면 조바심을 내며 그다음을 성취하기 위해 허둥지둥 달려가고 있는' 하버드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마사와 존이 어떻게 축복 같은 아이, '아담'을 가지게 되었는 지를 세심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마사가 내면의 동요, 부부간의 갈등, 화재에서의 탈출, 탈진상태로부터의 생환,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이겨내는 과정은 경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사는 아담을 가진 이후부터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내면의 목소리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손길이 그녀를 이끌어주고 지켜주었다고 합니다. 아담을 가지기 전의 부부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이든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것이 거짓이라고 증명되지 않는 한 기꺼이 믿겠다고 결심했다. 이것이 삶에서의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걸 직접 겪어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권력, 부, 직위, 영향력 등은 그(아담)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그런 것을 탐냈다. 그런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담은 바로 행복을 향해 간다. 우회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담은 같은 나이의 '정상적인'아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르게'한다. 그는 다른 우선순위. 다른 취미, 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


이 책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둔 엄마의 출산과 육아에 관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는 저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집니다. 몇 년 전,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를 구해준 힘이 실재했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오래전 어머니의 아기였으며 지금은 성인이 되어버린, 두 명의 아이를 둔 저는 마사의 근심과 찬란한 기쁨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잘못되었거나 고장 났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감추고 부끄러워하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라고, '함께 살아가자'라고 이야기해주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곁이 되지 못한다면 내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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