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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Apr 07. 2022

찬란했던 날들,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이별하기

시그리드 누네즈의 <친구>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수 없어...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오네,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가사 중)


대서양을 품은 리스본 광장에서 김윤아가 부르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내가 애정하는 영상이다. 얼마 전까지 <비긴 어게인 2> 프로그램에서 촬영한 영상을 시도 때도 없이 보곤 하였다. 시원한 바다와 그보다 더 청량하게 울려 퍼지는 김윤아의 목소리, 그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저 바다에 내 지나온 모든 삶을 던지고 물거품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제목과 같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챙겨보기 시작했다. 주연 배우는 영화 <승리호>(2021)와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2020)을 통해서 그 매력을 알고 있던 김태리와 남주혁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김윤아의 노래를 챙겨 듣게 되었다. 지난주,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스물다섯 스물하나> 노래 가사와 리듬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멍하니 있을 때마다 불쑥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어떻게 이 노래와 이별을 해야 하나?


16화 분량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과 남녀가 다르게 보는 사랑, 정답에 가까운 이별 공식'을 시청자에게 선물했다.


먼저,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시청자는 처음 사랑을 마주한 남녀의 달콤함에 미소 짓고 오해와 갈등에 마음 아파했다. IMF로 펜싱부가 해체되면서 새로운 학교를 찾아야만 했던 나희도(김태리), 같은 이유로 빚쟁이에게 쫓기는 처지가 되었던 백이진(남주혁), 두 사람은 이웃에 살게 되면서 우연히 마주쳤다. 눈을 맞춘 후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어느새 서로를 응원해 주는 사이가 되었다. 불운과 불안 사이에서 둘은 함께 있을 때만큼이라도 서로 행복하자고 다짐했다. 두 사람의 약속은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으로 변했고 멀리 있을 때도 서로의 응원이 닿았다. 두 사람의 입술도 닿았다.


두 번째,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다는 것을 드라마는 여실히 보여준다. 두 사람이 이별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슬픔을 나누는 방정식이 서로 달랐다는 데 있다. 남자는 괄호를 쳤고 여자는 나누기를 하였다. 911 테러 현장을 취재하면서 백이진은 어차피 해결 못할 슬픔과 고통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희도는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아픔도 나눠야 하는 것이라고, 고통도 함께 하고 싶었다, 고 말한다. 정답은 없다.


마지막은 이별 공식이다. 헤어지기 전 두 사람은 주체 못 할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었다.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동시에 몰려오고 버스정류소에서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시 잘 될 거라고, 민채의 아버지는 백이진이라고, 민채의 성이 김 씨인 것은 작가가 해결해 줄 거라고, 본방을 사수하던 가족에게 큰 소리 빵빵 쳤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작가는 작가의 길로 갔다. 그래도 마지막 만남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모드는 유지되었다.


아름다운 이별, 그런 것은 없다. 이별의 순간에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아야 한다. 매듭짓지 못한 이별은 나머지 삶을 미련과 후회, 자책 속에 보내게 할 것이다. 만남 만큼 이별도 중요하다.  지난주에 나는 사랑하는 생명체를 보내는 것에 대한 책을 읽었다.  


개와 이별하기, 시그리드 누네즈의 <친구>


“글쓰기로 슬픔이 달래지기를 바랄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 (나탈리아 긴츠부르크)

소설의 첫 페이지에 적힌 문장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소설의 주인공은 글쓰기로 슬픔을 달래고 있다. 아무런 예고없이 자살한 (연인에 가까운) 친구에게 주인공, ‘나’는 글을 쓴다. 자살한 친구에게는 세 명의 부인이 있었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고 주인공은 그의 제자였다.


소설의 시작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자살한 교수와 주인공 간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세 번째 부인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부인은 교수가 남기고 간 개를 맡아달라고 주인공에게 부탁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지만 결국 주인공은 세 들어 사는 뉴욕의 비좁은 아파트에 대형견을 받아들여야 했다.


개의 이름은 ‘아폴로’다. 아폴로는 주인공보다 몸무게가 더 나갔다. 산책을 가다가 걷기를 포기하고 바닥에 엎드리면 일으켜 세우지도 못하는 덩치였다. 과묵하고 나이도 많아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인공은 아폴로와 함께 산책하고 병원에 다니고 비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면서 친구가 되어간다. 사랑에 가까운 우정을 쌓아간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나누어 읽을 수 있다. 첫 번째 주제는 문학에 관한 것이다. 소설에는 많은 작가와 작품이 등장한다.  저자는 작품 속 대사, 내용을 인용하여 문학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저자는 대중 소비와 명성을 바라고 출판하는 대중들이 많아졌다고 비판한다. 자살한 교수는 ‘자가 출판의 부흥이 재난’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문학의 죽음이자, 문화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문장도 있다. 지난주에 읽었던 샌드라 거스의 <묘사의 힘>에서 ‘말하기’보다 ‘보여주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살한 교수는 ‘아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대해 쓰라’고 하면서 ’거의 모른다고 가정하고, 보는 법을 배우기 전에는 아는 게 없다고 가정하십시오.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예를 들어 거리에 나갔을 때 보이는 것들을 기록해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주제는 ’ 개의 삶‘이다. 처음 아폴로를 대면했던 시점부터 서로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는 과정은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 특별한 취향을 보이지 않던 아폴로가 주인공이 책을 읽어주자 집중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예전 같았으면) ’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쓴 편지를 개에게 낭독하다니, 정신 이상 징후로 치부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주인공은 아폴로에게 책 읽어 주는 일정을 일과에 포함시켰다.


이 책으로 개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리나 공원에서 지나치는 개를 무심하게 보낼 수 없게 되었다. 넌 어떤 삶을 살고 있니, 말 걸고 싶어질 것 같다.


책을 덮고 보니 또 다른 생각이 스며 나온다. 아폴로는 연인에 가까운 친구가 기르다가 그녀에게 보내 준 개다. 아폴로를 만나 같은 공간에서 살면서 우정을 쌓고 다시 그를 죽음으로 보내는 과정은 이별인사 없이 떠난 그녀의 친구(교수)를 보내는 절차로 이해된다. 아폴로와의 삶을 교수에게 들려주면서, 주인공은 교수를 잃은 슬픔을 달랠 수 있었다.


찬란했던 나의 젊은 날, 누군가를 거리에 세워두지 않았는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민채 엄마로 살아가는 나희도가 잃어버렸던 일기장을 돌려받았다. 일기장에는 서로에게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이 적혀있었다. 희도는 백이진과 마지막으로 말다툼을 하고 헤어졌던 장소에 찾아간다. 젊은 날의 백이진이 그 자리에 아직 서 있다. 그녀는 너무 오랫동안 세워두었다고 미안해하면서 사랑과 위로의 말을 전하고 그를 떠나보낸다.


나는 나의 젊은 날, 아직 그 자리에 세워 둔 사람이 있는지 돌이켜 본다. 후회와 회한으로 문득 생각나는 사람 말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카메라를 뒤로 돌려, 그 시절로 돌아가서 말하지 못하는 나는 어떻게 그를 보낼 수 있을까? 이렇게 글이라도 써보는 수밖에.


"내 온 마음으로 너를 사랑했어,

잘 가, 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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