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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r 17. 2022

전국 노래자랑 보면 어머니 생각난다

애니메이션 <코코>

일요일 오전 운동을 마치고 나는 점심을 먹기 위해 수영장 맞은편에 있는 수구레 국밥집을 찾는다. 12시 20분, 쫄깃한 맛이 나는 수구레 국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TV가 가장 잘 보이는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는다. 앉자마자 거의 동시에 빠아빠빠 빠~빠~, '전구욱 노래애자랑' 익숙한 송해 선생님의 함성에 신재동 라이브 밴드도 신났다. 카메라도 함께 흔들린다. 신나는 일요일이다.


이 풍경도 코로나 이후 많이 달라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MC 두 명이 스튜디오에서 요란하게 인사를 하고  나면, 옛날 영상을 틀어줬다. 최근에는 송해 선생님 대신 작곡가 이호섭 씨가 사회를 봤다. 송해 선생님의 나이가 올해로 96세가 되고 보니 기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아주 다행스럽게 지난 일요일(3.13일)부터 다시 송해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전국 노래자랑을 보고 있으면 어머니 생각이 난다.


일요일, 농사일이 아무리 바빠도 어머니의 밥상은 시간 맞춰 TV 앞에 착륙했다. 새끼들이야 앉든 말든 어머니는 TV를 마주하고 시청모드로 돌입한다. 어머니는 전국 노래자랑의 모든 순간을 진심으로 즐겼다. 아이고 저 봐라 저 봐라, 웃고 울었다.


어머니는 평생을 시골에서 벼 심고, 밭 갈고, 비닐하우스에서 수박 농사를 하시면서 고단함 속에 사셨다. 해맑게 웃으셨던 순간은 전국 노래자랑을 시청하실 때였다.


어머니는 왜 그렇게 전국 노래자랑을 좋아하셨을까? 어머니는 촌 구석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원래 살던 곳도 산 넘어 마을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재미난 것, 맛난 것, 별난 것, 구수한 사투리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어머니에게는 고구마 열 개 먹고 마시는 사이다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송해 선생님의 사회로 진행되는 노래자랑대회를 보시면서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로 여행을 떠나셨음에 틀림없다, 그 시간만큼은.  


어머니는 5일마다 한 번 열리는 장날에 멍게를 가끔 사 오셨다. 바다가 멀어 해산물 구경을 못하였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멍게 맛은 알았다. 쌉쌀한 첫맛이 혀 끝을 지나고 나면 청량한 바다 향이 입안에 가득 찬다. 두세 번 씹어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면 어이없게 단 맛이 남는다. 어머니는 멍게를 설렁설렁 썰어 입안에 담으면서 바다로 가셨음에 틀림없다.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것 하나만 꼽으라면 어머니 모시고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한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바다 보이는 펜션에서 멍게 한 접시, 바다회 한 접시 시켜 놓고 노래 한 자락 시켜 드릴 걸.


살다 보니 돌아가실 때 어머니 나이와 비슷해졌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시골집에서 길지 않게 가신 그분은 다른 세상에서 잘 계실까?


천국과 지옥이 없는 <코코>


내가 애니메이션 <코코>(2018)를 보게 된 것은 딸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인 멕시코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없다는 딸의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천국과 지옥이 없는 저승이라니.


소년 미구엘은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가족들은 기타에 손도 못 대게 한다. 증조할머니의 아버지가 음악 때문에 가족을 버렸던 것이 원인이었다. 생계를 책임 진 가장이 집을 떠난 바람에 온 가족이 한때는 힘들게 생활했다. 미구엘은 마을에서 개최되는 노래자랑 대회에 참석하려 했지만 기타를 구하지 못했다. 죽은 자의 무덤에서 기타를 잡는 순간,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세상으로 보내졌다.


하늘까지 맞닿은 높이의 건물과 화려한 색상으로 물든 거리가 미구엘의 눈앞에 펼쳐졌다. 귀여운 해골바가지와 뼈만 남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축제도 개최한다. 이승과 닮았다. 거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가수와 고조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내가 스토리보다 눈여겨본 것은 죽은 자들의 세계가 우리나라 영화  <신과 함께>(2018 )처럼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염라대왕과 저승사자, 지옥의 문, 재판은 없었다. 이승의 악행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승에서 추모하지 않는 자는 일정기간 지나면 저승에서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은 좀 마뜩잖았다.


나는 우리의 저승 모습보다는 <코코>에서 보여준 죽은 자의 세계가 더 매력 있게 다가왔다. 천국과 지옥이 꼭 있을 필요가 있을까? 어머니는 저승에 가지 않았다. 내 마음에 잘 살고 계신다.


꽃피는 봄부터 곡식 익는 가을까지 전국 노래자랑이 열렸던 곳을 두루 다녀보고 싶다. 몇 년 후, 꼭 그렇게 할 것이다. 그때도 어머니 생각이 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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