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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Feb 16. 2022

내 발톱 찧기

내 모든 상처와 실패의 공식

설 연휴를 잘 보내고 목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기 위해 방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아래쪽으로부터 진한 고통이 전해졌다. 방문에 발톱을 치였다. 에쿠, 짧은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출근을 서두르면서 거실 바닥을 힐끗 보니 핏자국이 몇 군데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흔적을 물에 적신 휴지로 닦았다. 발톱 아래 피가 새어 나오는 부분도 몇 번 닦아내고 나니 자연스럽게 지혈이 되었다.


약간의 통증을 느끼면서 이틀 동안 밥벌이를 하고 나니 주말이 왔다. 날도 춥고 해서 집에 박혀 주말을 보냈다. 문제는 월요일 새벽에 일어났다.


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지난 목요일 찧은 왼쪽 발 네 번째 발가락이 퉁퉁 부어 살짝만 스쳐도 아팠다.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벽에 잠깐 잠이 들긴 했지만 이불만 스쳐도 찌릿해서 깊은 잠은 기대할 수 없었다. 월요일부터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갔다.


일주일 동안 세 번 병원에 다녀오고 약을 타서 먹었다. 병원 갈 때마다 곪은 부분을 소독하고 처방전을 받았다. 항생제와 소염제, 위장 보호제가 든 알약을 아침저녁으로 털어 넣었다. 그 주 토요일 마지막으로 다녀오고 집에서 소독제만 바르는 동안 어느덧 아픔은 가셨다.


모든 상처와 실패는 내 발톱 찧기와 다를 바 없다. 돌보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했다.


내가 내 발톱을 찧고 보니 이제까지의 내 모든 상처와 실패 공식이 바로 이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간 기능이 좋지 않아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 젊은 날의 절제하지 못했던 음주 습관 때문이다. 나는 나의 육체를 돌보지 못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내 삶이 중년을 맞이하는 동안, 심리적으로 힘든 일도 많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승진에 실패하면서 나 자신을 자책했다. 수많은 심리적 자해로 내가 겪었던 마음의 상처는 나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던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믿음, 요행에 인생을 걸기도 한다. 자기의 육체와 정신을 자신이 돌보지 못하고 돌아보지 못한 결과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나는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통해 그것을 배웠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4년, 아우슈비츠의 수감자 한 명은 3월 30일에는 전쟁이 끝날 거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참 전쟁이 격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그는 희망을 가지고 수감생활을 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그는 3월 31일 사망했다. 사인은 발진티부스였다. 


이 사건을 옆에서 지켜본 빅터 프랑클은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을 살펴보았다.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염병이나 갑작스러운 추위가 몰아닥친 것도 아니었다. 근거 없이 찾아온 막연한 희망이 결국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위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빅터 프랑클(1905-1997)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빈 의과대학에서 정신과를 전공했다. 그는 1942년 9월 아내, 부모와 함께 유대인 거주지 '게토'로 이송되었고, 1944년 10월 19일에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 가족들은 노동과 병으로 숨지거나, 다른 곳으로 이송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전쟁은 끝나고 그는 살아남았다. 


빅터 프랑클이 수용소의 경험을 모아서 발간한 책 <죽음의 수용소>(독일어판 원제: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 체험기, 영어 제목: 인간의 의미 탐구)는 24개 언어로 번역되어 1억 부가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1997년 기준). 나는 이 책을 두 번(2001년, 2015년) 읽었다. 


저자는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어떤 일에 앞장서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운명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운명에 영향을 주는 일을 피하게 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결국 저자 자신도 삶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빅터 프랑클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선 안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헛된 희망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지 않는 것, 자신의 삶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개척해나가는 것, 이것이 상처받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다.


나의 왼쪽 발 네 번째 발가락의 안녕을 기원한다. 앞으로 잘 돌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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