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우 Jun 07. 2022

직장생활에서 당한 배신의 기억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직장생활이 괴로운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가 나의 근무 실적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상급자가 객관적인 수치보다는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점수를 매기고 순서를 세울 때, 저는 고민이 많아집니다.


몇 년 전, 승진을 앞두고 중요한 근무실적 평가를 할 때였습니다. 부서에서 2순위로 평가를 받아 결재를 올렸더니 상급자(A)가 제게 '부서에서 처음부터 1순위로 평가받아서 올라오면 좋을 텐데.'라고 충고해줬습니다. 상급자(A)는 저와 인간적인 관계도 친밀했고 제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면서 성과도 좋았습니다.


6개월 후, 부서장 평가에서 1순위 점수를 받아 최종 확인자인 상급자(A)에게 결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를 2순위로 조정해서 결재를 올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나중에 상급자(A)는 '실익이 없었다.'는 말로 저를 2순위로 내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제가 1순위로 평가를 받아도 승진할 수 없으니 이미 앞서 있는 직원을 그대로 앞에 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았으면 기대를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업무는 저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평가는 다른 사람을 챙겨준 것에 실망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승진에서 밀렸습니다.


타인의 평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에 제게 가장 큰 힘을 준 격언은 니체의 말이었습니다. 나를 쓰러뜨리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는 말을 에너지 삼아 버텼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지 상급자나 인사팀의 평가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겠다.'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최근에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습니다. 1년 전, 일을 같이 하자고 해서 상급자(B)가 자신의 부서에 저를 데려왔습니다. 나름대로 무리 없이 일을 진행하였지만 저 말고 다른 직원에게 1순위 평가를 했습니다. 저는 밀렸습니다. 이번에는 그려려니 하고 그냥 체념하였습니다. 어차피 나도 죽자 사자 일을 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6개월마다 한 번 씩 돌아오는 평가가 싫어서라도 직장을 빨리 그만두어야겠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에게 다가가기 위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잡았지만 니체는 쉬운 듯 쉽지 않은 비유와 상징으로 나를 내동댕이쳤습니다. 모든 신들은 죽었으며 인간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라고 니체는 말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의 과정이며 몰락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듯한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잠을 자는 것은 결코 보잘것없는 기술이 아니다잠을 자기 위해서는 온종일 그것을 기다리며 깨어 있어야 한다.” 


글로 쓰인 모든 것들 중에서 나는 오직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피로 써라그러면 그대는 피가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나는 안일하게 독서하는 자들을 증오한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우리가 삶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진리다.” 


위대한 영혼에게 자유로운 삶은 아직도 열려있다진실로 적게 소유하는 자는 덜 소유당한다청빈함이여 찬양받을 지어다.” 


그렇다내게는 상처 입힐 수 없는 것묻어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바위라도 뚫고 나오는 것그것은 나의 의지(mein Wille)라고 불린다이 의지는 묵묵히 그리고 변함없이 세월을 헤치며 나아간다.” 


“한 번도 춤을 추지 않은 날은 잃어버린 날로 쳐라한바탕의 웃음도 가져다주지 않는 지혜는 모두 우리에게 거짓이라고 하라 


나이를 더 먹은 어느 날 다시 이 책을 펼치면 밑줄을 긋게 되는 부분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우블에 등장한 놀라운 배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