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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Jun 13. 2022

우리들의 블루스, 이병헌의 블루스

행복은 블루스처럼...

노희경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습니다. 우울증, 다운증후군, 기러기 아빠, 학생 부부, 청소년 임신... 제작진은 주연급 연기자를 여러 명 포섭해서 옴니버스식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보통 16회로 마무리하는 드라마가 20회로 늘었습니다. 지난 일요일(2022.6.12.)을 끝으로 우리들의 블루스(이하 '우블')가 막을 내렸습니다. 주말이 심심해지겠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동석(이병헌)을 주목했습니다. 우블 첫 회, 선배 동기들의 모임에 건들건들 몸을 흔들면서 노래방에 들어오는 이병헌에게 반했습니다. 동석은 옥동(김혜자)과는 모자 사이었지만 냉랭한 분위기였습니다. 6회, 9회, 10회에서는 선아(신민아)와 동석 간 밀고 당기는 러브스토리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습니다. 


시청자 중 누구는 이병헌의 제주말(言)이 제일 찰지다고 추켜세웠습니다. 누구는 '이병헌의 재발견'이라고도 했습니다. 잘생긴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차곡차곡 스토리를 채워가던 동석은 최종화에서 몇 번이나 울음을 삼키기도, 뱉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우리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자면서.


선아와 동석의 블루스


선아와 동석의 이야기에서 노희경 작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울증 이야기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동석은 자기는 무식하니 네(선아)가 앓고 있는 우울증에 대하여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보라고 했습니다. 선아는 분명히 밝은 대낮인데 캄캄해지고 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젖은 이불을 덮고 있는 듯하다고 했습니다. 동석은 그럴 때는 그건 가짜야, 거짓말이야라고 외치라고 하면서 안되면 자기에게 전화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신 차리라고 욕을 한 바가지 해줄 거라고.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우울증에 대한 느낌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때로는 왜 그들이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아주 조금 이해되었습니다. 그 막막함과 절망을 티끌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우울증의 원인과 대처 방법을 몇 장면으로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의학적으로 정답을 제시했다고 할 수 없겠지만 많은 시청자가 작가의 대사에 공감하였을 것입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다운증후군 환자로 출연한 영희(정은혜)의 이야기도 감동과 교훈을 함께 주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설득력이 있는 것은 다운증후군이 있는 정은혜 배우가 연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시청자 누구나 믿게 되었습니다. 다운증후군 환자도 학습만 한다면 비행기도 혼자 탈 수 있고, 취미 생활도 할 수 있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장애인을 볼 때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 가를 드라마는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1밀리미터 바뀌었습니다.


옥동과 동석의 블루스


옥동은 어린 동석을 데리고 부잣집에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갔습니다. 옥동은 동석이 밥 먹고 학교만 다니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석은 달랐습니다. 의붓형제들에게 매일 맞았지만 제일 서러운 것은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옥동이 그렇게 시켰습니다. 지나가는 강아지는 귀여워하면서 자신에게는 웃음 한 번 주지 않는 옥동이 죽도록 미웠습니다.


옥동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의붓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목포로 가는 배에서, 옥동의 옛집을 찾아가는 트럭 안에서, 다시 제주로 돌아와 한라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그동안 미뤄왔던 말들을 조금씩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차마 물어보지 못한 말, 물어볼 수 없었던 말, 뼛속에 사무쳐 이제는 화석이 되어버린 말들을. 


옥동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도 하지 말고 내다 버리라고 합니다. 자신은 미친 여자였다고 회한의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동석은 눈 덮인 한라산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옥동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영상에서 동석은 한라산에 꽃피면 어멍과 함께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꼭 함께 오자고.


동석의 블루스는 우리들의 블루스다. 


동석의 블루스는 사랑과 가족을 향한 블루스입니다. 환희와 즐거움만 있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자랑과 웃음만 가득한 가족이 어디 있을까요? 슬픔과 연민으로 사랑이 흩어지고 실망과 부끄러움으로 가족은 부서집니다. 그것이 삶이고 우리들의 블루스입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자막을 한 번 새겨보겠습니다. 작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우리는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모두 행복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블루스'라는 제목과 노희경 작가의 마지막 메시지에서 저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였습니다. 블루스는 느린 음악입니다. 행복도 느릿느릿 블루스처럼 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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