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만의 시대는 가고 공복의 시간이 왔다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by 필우

의사가 살을 빼라고 권했습니다. 하루 식사량을 1,700kcal로 정해줬습니다. 의사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몸무게는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권고가 스트레스가 될 즈음에 병원을 옮겼습니다. 사상구에 있는 병원에서 10년 전 의사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잔소리와 결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방간이 있는데 몸무게를 줄여보는 게 어떻겠어요. 두 번째 진료에서 의사가 넌지시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 한 번 빼보자.


김밥점심 & 저녁다섯시반 프로젝트


저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점심시간을 김밥으로 때우기. 월요일은 간부와 화요일은 동료와 식사를 합니다. 나머지 3일은 혼자서 밥을 먹습니다. 오전 10시 반쯤 사무실 옆 시장에 김밥을 사러 나갑니다. 시장 아주머니는 아침에 미리 싸 둔 김밥을 그냥 썰어서 비닐에 척척 담습니다. 직원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나간 빈 사무실, 브런치 글을 읽거나 유튜버를 보면서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다 보면 김밥 속 단무지와 시금치, 당근, 계란, 우엉이 입속잔치를 벌입니다.


'김밥점심'(프로젝트 이름)으로 저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봅니다. 먼저, 시장 가는 길입니다. 오전 내내 자리에 앉아있다가 잠시라도 걷습니다. 허리를 펴고 걷는 길에서 건강을 함께 챙깁니다. 물가 폭등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요즘, 2,500원으로 한 끼 때우면서 점심값을 아낍니다. 밥알 한알, 단무지 한 조각의 맛을 일깨우면서 여유를 즐깁니다. 건강, 경제, 여유, 이렇게 세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두 번째, 저는 저녁 5시 30분에 구내식당으로 향합니다. 구내식당은 제가 원하는 만큼 양을 조절해서 밥과 찬을 펄 수 있습니다. 음식을 수북하게 고봉으로 담지 않고 식판의 수평에 맞춰 깨끼로 채웁니다. 이른 저녁을 마친 후 다음날 아침 6시 30분까지 공복을 유지합니다. 저녁 수영을 하는 날에도 물로 배를 채우고 참습니다.


'저녁 다섯시반'(프로젝트 이름)으로 13시간 공복을 유지합니다. 저는 밤 9시경부터 잠이 들 때까지, 잠에서 깨어 요가하는 시간까지 배고픔을 느낍니다. 배는 고프고 머리는 맑아짐을 느낍니다. 저의 신체는 먹을 것을 찾느라 다른 탐욕이 줄어듭니다. 다음날 아침, 어제보다 줄어든 깜박이는 체중계 숫자를 볼 생각을 하니 엔도르핀이 솟아납니다.


저는 공복감을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배는 고프고 돈은 없어 길거리 음식을 한참이나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순간 저는 장발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긁어도 라면 한 그릇 사 먹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식당에서 밥과 반찬은 언제든지 추가해서 먹을 수 있고, 몇 발만 움직이면 동네마다 즐비한 편의점에서 편하게 먹을 것을 고를 수 있습니다. 그도저도 귀찮으면 간단하게 휴대폰으로 주문합니다. 식당에서 남기는 음식과 냉장고에 오래 두었다가 상해서 버리는 음식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때뿐입니다.


인간의 탐욕이 지구를 망치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저 또한 음식에 대한 욕망이 정신을 갉아먹은 지도 오래전부터입니다. 살 빼기를 시작하면서 나의 탐욕에 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티나 도시에 사는 한 젊은이가 떠올랐습니다.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


앙드레 지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 <굶주림>을 읽는 독자에게 ‘손가락 가득히, 마음 가득히 피와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앙드레 지드의 예고가 맞았습니다.


며칠을 굶주린 주인공이 아는 이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매고 있던 넥타이를 포장하여 그에게 건넸습니다. 물건을 받은 그 사람도 돈이 없어 다시 돌려주려고 하는 대목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입니다.


“가지시오, 가져요. 그냥 드리는 거지요. 별것 아닙니다. 하찮은 거지요. 내가 이 땅 위에 가지고 있는 거의 전부입니다만”

나는 내 자신에게 깊이 동요되었다. 그 말은 석양의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그렇게나 허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83쪽)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은 글로 먹고사는 한 젊은이의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가련한 이 젊은이가 동정심 없는 도시의 뒷골목에서 차갑게 식어갈 것이라는 생각에 책장을 넘기기가 망설여졌고 배부르게 먹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나는 온 나라에서도 비길 데 없는 머리와 하역인부라도 때려눕히고 콩가루로 만들만한 두 주먹을 가지고 있다(신이여 용서하소서). 그런데도 크리스티나 도시 한복판에서 인간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굶주리고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질서와 순서가 그런 것인가?”(137쪽)


크누트 함순은 소설에서 세상의 질서와 순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굶주림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그래서 살은 좀 뺐나?


연초에 비해 4 킬로그램 정도 빠졌습니다. 과체중을 면하기 위해서 뺄 게 조금 더 남았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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