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아직 4월, 산사의 이른 아침 공기는 차다. 요가매트를 펼치고 세속을 향한 창문을 연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새삼 깨닫는 것이지만 세상 좋은 땅은 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창 밑, 오목조목 얼굴을 맞댄 밭뙈기를 지나서 꼬불꼬불 계곡을 따라가면 사람 사는 곳이다. 볼 빨간 해님은 지각한 학생 마냥 서둘러 솟아오르려 바둥바둥 댄다. 창밖 풍경을 멀리 보내 놓고 이제 나 자신에 집중한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뱉는다."
퇴직 후 1년 차 되는 해, 3개월 정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이다. 그때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았습니다.
알람 소리에 잠을 깨면 6시 20분입니다. 초록색 요가매트를 펼칩니다. 오늘 하루치의 숨을 붙여놓기 위해 가장 중요한 목을 이리저리 돌려봅니다. 아직 잘 붙어있습니다. 고양이 자세로 허리를 늘리고 푸시업으로 팔과 허리, 허벅지 근육을 긴장시킵니다. 눕습니다. 무릅을 가슴까지 당겨 허리는 안녕한지 물어봅니다. 가슴과 다리를 동시에 몸 가운데로 모으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복부 근육을 강화합니다. 요가와 스트레칭, 코어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한 이런저런 동작을 이어갑니다.
제가 아침에 '몸 깨우기'를 시작한 때는 3년 전부터입니다. 퇴직 후 임시계약직이 되기 위해 제일 먼저 챙겨두어야 할 것은 건강입니다. 건강하게 나이를 먹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의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길게 늘어진 목, 앞쪽으로 움츠린 어깨, 구부정한 허리,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허벅지와 엉덩이, 바닥을 질질 끌며 걷는 사람은 영판 '영감'입니다. 목 쪽으로 살짝 당긴 아래턱, 날개처럼 펼쳐진 어깨, 허벅지와 엉덩이가 받쳐주는 곧은 상체, 빨래판 처럼 직선으로 자리잡은 복부, 꾹꾹 땅을 밟으며 걷는 사람은 '시니어 근로자'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만들기 위한 운동 중 최고는 요가입니다. 저는 유튜브를 뒤졌습니다. 유튜버 '요가 소년', '에일린'을 거쳐 '서리 요가'까지 두루 따라 해 봤습니다. 코어 근육을 강화하는 동영상도 챙겨보았습니다. 3년 정도 이런저런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 지금처럼 저만의 루틴이 생겼습니다.
일과로 정해놓지 않으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는 아침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멍한 정신을 깨우기 전에 몸부터 먼저 깨우는 것입니다. 바쁜 출근길에 15분 이상 빼기가 어렵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빠지지 않고 매트를 깝니다. 손 끝, 정수리, 발 끝까지 피와 기운을 보내다 보면 빠르게 정신이 돌아옵니다.
아침 몸 깨우기를 할 때 가끔 저는 산사로 갑니다. 템플스테이를 상상합니다. 순식간에 아파트 건물로 들어찬 베란다 풍경이 푸른 소나무 숲으로 변하는 기적을 맛봅니다. 가끔 저는 해외로 나갑니다. 몇 년 전 가족 여행을 다녀왔던 파리, 씨엠릿, 빈, 로마, 베네치아, 루체른, 인터라켄, 방콕, 프라하에서 만났던 넓은 광장과 들판을 떠올립니다. 퇴직 후 부터 1년에 한 곳 정도 들를 예정입니다. 70세까지는 바쁠 것입니다.
이왕 몸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문학자 중 몸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 고미숙 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고미숙은 좀 별나게 사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교수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여서 제도권 바깥에서 공동체를 꾸미고 집필과 강연으로 밥벌이를 한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저자가 몰입한 분야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허준의 <동의보감>입니다. 이 분야에 대한 책을 6권이나 저술하였습니다. 저는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라는 책을 읽은 뒤, 작가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동의보감의 눈으로 본 여성, 가족, 교육, 운명, 정치와 사회에 대하여 가볍지만 깊이가 있는 책입니다.
저는 딸이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종종 꿈을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저자는 ‘꿈을 가져라, 꿈은 이루어진다. 등등.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사실 이건 우주의 이치에 어긋난다. 막 언 땅을 뚫고 나온 새싹들에게 가을의 열매를 강요하는 격이다.’라고 하면서 열매라는 것은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다 보니 어떤 성취를 이루는 것뿐이다.’라고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몸을 탐구하면서 살고 몸을 쓰는 것입니다. 그녀는 몸을 쓰는 예로 걷기를 들면서, 걷는 것은 ‘몸은 다소 힘들지만, 마음은 그때 비로소 쉬게 된다. 마음이 쉬면 잡념이 아닌 성찰이 시작되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은 피부과, 안과, 치과, 내과 신체 분야별로 자신의 몸을 분리하여 병원에 맡겨놓고 생각은 SNS에 저당 잡힌 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