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지도 교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날 텐데, 괜찮겠어요?"
박사 공부를 시작하기에 나이가 많았지만 나는 용기를 냈습니다. 기술경영학* 전공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알고 있던 교수님에게 지도교수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며칠 후 전화가 왔습니다. 딱 맞춤인 교수가 있는데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문제없다고 말했습니다. 2016년 가을학기, 저는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기술경영학(MOT, Management Of Technology): 기술(또는 공학) 관점에서 경영학을 연결하고 통합하여 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3년 동안 눈은 한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남구 용당동으로 출근했습니다. 주중 하루는 땡 하자마자 사무실을 뛰쳐나갔고 토요일은 오전부터 오후 네 시까지 학교에 남았습니다. 졸업 전 1년간은 방학 중에도 논문 작성을 위해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평일에는 7시에 시작되는 수업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차 안에서 빵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았습니다.학교 근처에 일찍 도착하는 날이면 칼국수나 선지국밥으로 배를 채웠습니다. 저녁 수업 중 꾸벅꾸벅 졸 때도 있었습니다. 열강하고 계신 교수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의 피곤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박사학위를 밟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료와 동시에 학위를 받아 챙기는 것입니다. 3년 수료과정을 마친 후, 이제 수업은 끝났다, 지금부터 논문을 쓰자,라고 마음먹었다면 학위는 기약할 수 없습니다. 졸업 후, 한 두 해 어영부영하면 수업받을 때의 열정과 속도를 되찾기가 힘들어집니다. 시간은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포기하기 일쑤입니다.
첫 번째는 수업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입니다. 대학원 수업 3학기째, 저는 MOT개론 수업을 들었습니다.교수님이 내준 과제를 하면서 어설프지만 짧은 논문의 형태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주제는 제가 하고 싶었던 '연구개발 결과물의 사업화 방안'이었습니다. 수업을 맡았던 교수님께서 '이왕 만들었으니 학회에 발표를 한 번 해 보라'고 부추겼습니다. 학회 발표 준비를 하면서 내용을 더 다듬었고 발표 후, 리뷰어(reviwer)의 지적을 받아들여 다시 수정 작업을 했습니다. 이 내용은 나의 논문 1 주제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째, 저는 '연구방법론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을 통해 논문 결과를 증명하는 방법으로 AHP 방법론*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수업 중 배운 연구방법론 하나를 선택하여 실전에 적용하는 과제를 받았습니다. 저는 AHP를 선택하고 지난 학기 때 서술했던 내용과 다시 연결시켜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박사학위 논문이 골격을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 계층 분석적 의사결정):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진 문제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비교하는 계층을 구성하여, 전문가의 선호도를 측정하는 방법
대학원 과정에서 '수업 따로, 논문 따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논문은 별도로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처음부터 전공필수 과목을 제외하고는 목적을 가지고, 즉 수강과목을 '논문 쓰기'에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수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학점을 잘 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논문 주제를 가급적 빨리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지도교수와 대강의 논문 주제를 상의하였습니다. 1학년 때부터 조금씩 구체화시켜 나간 덕분에 수업 중 과제를 늘 논문으로 연결시켜 보려고 애썼습니다.
두 번째는 지도 교수와의 소통입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학위를 받고 못 받고는 지도교수에 달렸습니다.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연구 방법론 선택, 학회 발표, 논문 제출의 모든 단계마다 자주 소통을 해야 합니다. 교수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열성적인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교수와 상의한 일정 보다 한 주 정도 미리 자료를 작성하고, 한 두 페이지 더 많이 만들어 두면 좋습니다.
지금 학위를 시작하는 직장인이라면 젊은 지도교수를 찾는 게 좋습니다. 저의 젊디 젊은 지도교수는 현재 왕성하게 연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 퇴직 후, 할 일이 없으면 랩실에서 연구업무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젊은 지도교수 밑에 박사와 석사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신나는 일입니다.
저는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퇴직 후에도 관심을 가지고 읽고 쓸 수 있는 분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 자격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심의, 평가, 컨설팅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전공 학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박사 자격을 취득하여 각종 위원회에 참석할 수 있다면 할 일도 생기고 위원회 수당도 받을 수 있겠다는 현실적인, 세속적인 욕구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가진 개방형 직원과 함께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의 팀장으로 근무한 그분은 기획서도 체계적으로 잘 작성하고 논리적으로 보고를 잘했습니다. 윗 분들에게 전적인 신뢰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분이 박사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저렇게 논리적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짐작했습니다. 저도 그 방법을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었습니다. 제 생각을 키우고 통찰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공부가 제게 중요했습니다.
공부방법을 위한 책으로서는 데카르트의 <방법서설>보다 좋은 책은 없습니다.
<방법서설>의 부제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입니다. 르네 데카르트는 이 책을 '이성을 올바르게 이끌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합니다. 부제와 데카르트의 설명보다는 다음 문장이 이 책을 더욱 잘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직후에 이런 방식으로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생각하려 애쓰는 동안에도 그것들을 생각하고 있는 나는 반드시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 즉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실하고 분명해서 회의주의자들의 지극히 터무니없는 그 어떤 가설에 의해서도 흔들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면서, 나는 주저 없이 이것을 내가 추구하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데카르트는 이 책에서 학문에 관한 다양한 고찰과 방법의 주요 규칙, 도덕률, 신과 인간 존재의 증명, 자연철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책의 내용 중, 데카르트가 '절대로 벗어나지 않겠다는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법칙이 있다. 이 규칙은 학문을 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지만 생각에 관한 과정에서 빌려 쓰거나 의사 결정의 방법으로 일반화시켜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네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첫 번째는 명확하게 진실이라고 알게 된 것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절대로 진실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 두 번째는 검토 중인 각각의 어려운 일들을 가능한 많은 부분으로 그리고 해결하기에 충분하도록 필요한 만큼 나누는 것, ▲ 세 번째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쉽게 알아보는 대상들에서 시작해서 조금씩, 말하자면 단계를 밟아 보다 더 복잡한 대상들을 알게 될 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도록 내 생각들을 순서대로 이끌어가는 것, ▲ 마지막으로는 모든 경우에 있어 완벽하게 열거하고 전반적인 재검토를 하여 빠뜨린 것이 전혀 없다고 확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기억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생각을 발전시키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어떤 것을 다른 사람에게 배울 때는 자기 스스로 발견할 때만큼이나 잘 파악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방법서설>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자신만의 생각을 세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진리 가 아닌 것은 제거해 가면서 생각과 결정의 순서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을 되뇌는 순간이 내가 존재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