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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Jan 14. 2023

혼자 식사하는 팀장의 변명

스벅에서 혼자 샌드위치 먹다가 A 팀장에게 들킴

점심 식사시간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A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군가에 대한 걱정을 담은 목소리였다.


"허팀장, 직원들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니, 그런 일 없는데, 왜?"

"점심 먹고 우리 직원들과 차 한잔 마시려고 스벅에 갔는데 거기서 허팀장을 봤어."

"맞아, 거기 있었어. 그런데 왜?"

"직원도 안 보이고 혼자 구석에 앉아 있어서... 말도 못 붙였어"


A 팀장이 걱정하는 사람은 나였다. 내가 직원들에게 따 돌리고 밥도 못 먹었을까 봐 쭈빗쭈빗하면서 내게 전화를 하였다. 난 '그게 아니라, 요즘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점심시간을 이용하고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A 팀장은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 그래도 점심은 직원들과 함께 해야 하지 않느냐, 고 가볍게 충고했다.


  일 년 정도 현재 팀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대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살아온 세월의 양과 질이 다르다 보니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나의 철칙 중 하나는 일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의 소재도 부족하다. 나의 인문학적 다양성이 부족한 탓이리라. 혼자만 이야기를 장황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 팀원 중 MBTI 분류상  'E' 타입이 두 세명만 있어도 점심시간이 즐거울 것이다.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바쁜 일과 중 점심시간만큼은 상사 눈치 보지 않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을 것이다. 나이 찬 팀장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메뉴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식당에 들어가면 자리 지정하는 것까지.


  어느 날, 조용히 팀 막내를 불러 이야기했다. 내가 몸무게를 좀 빼야 하는데, 함께 밥을 먹다 보니 절제가 안돼. 앞으로 사무실에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해결할게. 일주일 중 화요일, 하루만 식사를 같이 하자. 처음에는 나 혼자 사무실에 남겨두고 식사를 하러 가는 게 어색했던 직원들도 이제는 점심시간만 되면 조용히 사라진다. 나는 미리 사둔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휴대폰을 보거나 독서를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즐긴다.


  직장마다 점심식사 방법이 다르지만 내가 근무하는 곳은 아직까지 우르르 몰려다니는 분위기다.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약간의 변주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 년 넘게 칸막이가 있는 식당에서 대화를 자제하면서 먹었다. 환자가 급증하던 시기는 도시락을 시켜 자기 자리에서 먹었다. 자의든 타의든 식당의 형태도 바뀌었다. 혼자서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식탁을 배치된 곳이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전 일본 홋카이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좌석배치는 물론이고 차림도 1인용이 원칙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혼자 여행하기. 혼자 영화 보기. 혼자 술 마시기. 함께 하지 않는다면 혼자 하는 것을 즐겨야 한다. 다행스럽게 나는 혼자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직장을 떠나면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할 것이다. '티스토리'에 내가 맛본 음식과 가본 식당의 느낌을 정리하고 있다. 퇴직 후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 맛과 분위기를 유지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때의 나를 돌아볼 것이다.


  그날은 오전 업무가 바빠서 김밥을 사 두지 못했다. 마침 스벅 쿠폰 남은 게 있어서 매장에 갔다가 A 팀장과  팀원에게 발견된 것이다.

'A 팀장, 직원들과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 몸무게도 1킬로그램 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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