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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Apr 05. 2023

냄새 말고 향수

피고 싶은데 냄새는 싫고

엘리베이터 안 사정


엘리베이터만큼 무방비 상태로 타인에게 노출되는 공간이 있을까? 여기에서는 한 팔만 길게 뻗어도 상대방에게 쉽게 닿을 수 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 타기라도 하면 나는 약간 긴장한다. 혹시 돌아서서 주먹을 휘두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비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영화감독이 있다. 


정청(황정민)이 한바탕 칼부림 후에 '드루와'를 연발하는 장면은 영화 <신세계>(2013)에서 최고의 컷 중 하나다. 최근에 본 엘리베이터 신 중에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범죄도시 2>(2022)에서 강해상(손석구)이 엘베 안에서 뒷쪽으로 쓱 돌아보는 장면이다. '강해상입니다.' 서늘하다.


"강해상입니다."(출처: <범죄도시 2>)


엘베 안에서 폭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는 연인끼리 눈빛을 교환하기에 좋은 장소다. 남들 눈치채지 못하게 손을 잡으며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장면도 있다. 시간상 불가능해 보이는 데 키스를 하기도 한다. 헤어진 남녀 단 둘이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고장이 나서 멈춰선다(KBS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박단단(이세희)과 이영국(지현우) (출처: <신사와 아가씨>) 


  엘리베이터 안에는 폭력과 사랑 말고 냄새도 있다. 냄새는 다른 것과 달리 거부할 수 없다. 혼잡한 시간에는 앞사람의 뒤통수가 코앞이다. 출근은 해야 하니, 좋은 향이든, 나쁜 냄새든 참아야 한다. 몇 초가 한 시간처럼 더디게 지난다. 내가 맡고 싶지 않은 냄새는 담배냄새다.


식후에 담배 한 대 피워야 하는 사람이 있다. 점심식사 시간이 끝나고 우르르 엘리베이터를 타면 그 사람에게 밴 냄새를 피할 수 없이 그대로 맡아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할 때는 냄새가 덜했다. 이제 담배 냄새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막무가내다.


내가 담배를 멀리한 이유는...


시니어가 되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냄새다. 홀아비 냄새를 풍기는 사람에게 누가 다가가겠는가? 누가 말 걸고 싶겠는가? 나는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고민 중에 향수를 한번 사용해 보기로 했다. 가족과의 대화 중 이런 말을 했더니, 아들이 생일에 맞춰 베르사체 향수병을 선물했다. 


맘에 들었다. 싱그러운 햇살이 퍼지는 여름 아침, 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상쾌함이 사방으로 번지는 향이었다. 조심스럽게 살짝 뿌리고 출근하면 하루종일 우쭐했다. 나의 향이 상대를 기분좋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나는 좋았지만 아내는 아니었다. 평소에도 인공적인 화합물에 거부감을 가졌던 아내는 사나흘 지나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다고 했다. 향수병은 집에서 쫓겨나서 한참 동안 차 안에 박혔다. 지금은 사무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병뚜껑 연지 오래다.


  좋은 향으로 덮을 게 아니라 냄새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나는 내 몸에 담배 냄새가 쌓이는 것을 막기로 했다. 담배를 사지 않게 된 이후로는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담배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다. 담배가 주는 유익함이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 소통의 도구로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니코틴이 필요하다. 나는 타인의 흡연을 존중한다. 문제는 냄새다. 냄새만 없애주면 좋겠다. 특히 찌든 담배 냄새를 풍기는 일은 삼가주면 좋겠다.


화면에서 찌든 냄새가 날 것 같은...(출처: unsplash)


나도 아주 어쩌다가 담배를 손에 쥐게 되면 물로 씻거나 물휴지로 손을 문지른다. 물로 입속을 헹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하더라도 피우고 싶을 때가 있다. 


담배는 피고 싶고, 냄새는 싫고. 담배 냄새를 향수로 바꿀 수만 있다면...


잘만 연구하면 좋은 냄새나는 향수로 만들 수 있을 듯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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