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우 Apr 14. 2023

퇴직을 소재로 악착같이 글을 쓰려는 이유

미리 써 보는 퇴임사

가보지 않은 길, 퇴직


자살까지 안 했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다. 우리나라에 사는 시니어 집단이 생애 후반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책임도 크다.  


OECD 국가 노인 자살률(출처: 중앙일보)


가보지 않은 길은 두렵다. 그래서 인간은 배운다. 30대에 사회에 발을 내디디기 위해 10년 넘게 학교에서 배운다. 말하기와 글쓰기를 배우고 역사와 지리를 배운다. 급우들과 사귀면서 관계를 쌓는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곳을 '학교'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의미다. 학교에서 친구를 잘 사귀면 사회활동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 사귀면 악의 구렁텅이로 함께 빠지기도 한다.


  50대가 되면 우리는 커다란 인생의 위기 또는 기회를 맞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위기란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는 누구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시 학교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런 시스템은 없다. 시니어 라이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퇴직은 '기회'다. 새로운 삶을 살아볼 기회다. 나 자신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잘했든 잘못했든 할 만큼 했어. 돌이키지 못할 시간을 변명으로 채우려고 하지 마. 

이제 껍데기를 버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너의 가슴이 콩딱 거리는 일을 해봐!


돈 안 되는 퇴직 준비 이야기


출판사 편집장을 오래 하고 책 쓰기 강의를 하는 전문가에게 물었다. 퇴직 관련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내용으로 구성하면 좋겠냐고. 전문가의 대답은 나를 얼어붙게 했다. 누가 그 글을 읽어요? 시장성이 없다는 것이다. 


YES24에서 제공하는 판매지수를 살펴봤다. 퇴직 관련 도서를 검색해 보면 대부분의 책이 판매지수 1,000을 넘지 못한다. 최근에 읽었던 <퇴직하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이동신 저)이라는 책은 9,500 정도다. 이 분야에서는 베스트셀러다. 잘 팔리는 책 200위 안에 드는 책의 판매지수는 십만 단위 정도다. 기본적으로 만 단위는 넘어야 하는데 백 단위가 대부분이니 퇴직 도서는 인기가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 전문가는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예방, 즉 '미리 준비하세요'라는 외침은 거의 판매되지 않는다고 한다. 퇴직하기 전에 이런저런 준비를 하세요, 이런 태도를 가지세요, 하는 가르침을 독자는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당장 돈이 되지 않으면 배울 생각이 없다.


나는 왜 퇴직을 글감으로 하는가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퇴직은 '나의 탄생' 못지않은 중요한 인생 이벤트다. 30여 년 동안, 출퇴근을 반복하고 동료와 식사를 하고 내게 주어진 일을 했다. 나의 밥벌이의 힘은 위대했다. 나는 건강하게 살아있다. 


특정 날짜를 기준으로 더 이상 나는 내가 다니던 직장과 상관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월급은 제로가 되었다. 나의 사회적 지위라고 여겼던 직장의 직위는 박탈되었다. 그야말로 낭떠러지로 추락한 것이다. 나는 계단이 필요하다. 천천히 내려가야한다. 아무도 만들어주지 않는 나의 계단.


두 번째 이유도 개인적인 이유다. 나는 퇴직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기 때문에 할 말이 많다. 나의 브랜드 개발은 30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적었다. 누적 도서가 1,100권을 넘겼고 나만의 독서 방법이 생겼다. 어떤 책을 내게 던져줘도 요약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독서 방법론에 관한 특허도 출원했다.


50대 초반, 나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기술과 경영이 접목된 '기술경영학' 박사과정을 밟고 3년 만에 학위를 취득하였다. 50대 후반, 책을 쓰고 유튜버 채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브런치스토리에 주기적으로 글을 써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향하는 곳은 나의 퇴직이다. 나는 쓸 글이 많다.


마지막으로 퇴직 이야기를 쓰고 싶은 이유는 나의 후배에 대한 애정이다. 나는 용감하지 못해서 조직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순응해 왔다. 내가 만난 소수의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으로 만족했다. 선배다운 선배, 어른다운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다. 나의 후배들이 직장을 다닐 때도 행복하고, 시니어가 되었을 때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의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미리 써보는 퇴임사


매년 6월과 12월이 되면 직장을 떠나는 선배들이 사내 게시판에 작별의 인사말을 올린다. 예를 들면 이런 글이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쥐꼬리 월급을 받으면서 버텼다. 처음으로 ##사업도 성공적으로 완성했고 %%상도 받았다. 이런 글에는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혹시 내가 힘들게 한 직원이 있었다면 이해해 달라, 본심이 아니었다.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연락해 달라. 패턴이 비슷하다.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실망스러웠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희망 섞인 문장을 본 적이 없다. 30년 동안 정말 일만 열심히 하시고 떠나는 분을 나는 존경할 수는 없었다. 나는 다른 퇴임사를 쓰려고 한다.


다음은 퇴임사 초안이다. 쓸 때마다 바뀔 것이다.

반갑습니다. 

이번에 퇴직하는 땡땡땡입니다. 

서면 로터리에 개인 사무실을 차렸습니다. 

기술경영학 박사학위와 기술 평가사 자격증으로 기술사업화분야 컨설팅업을 시작했습니다. 

독서 방법론 특허와 독서 관련 출간 도서가 있어 독서 강의도 합니다. 

퇴직자를 위한 특강도 준비 중입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사진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적이 없어지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