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야
'적'에는 본적, 호적, 학적, 병적, 당적이 있다. 퇴직할 때가 되어가니 나는 다른 '적'이 떠오른다. 아! 내가 회사에 적을 두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적이 없어지는 날이 1,000일 하고도 며칠 더 남았다. 오늘의 밥벌이가 내일의 밥벌이로 이어지지 못할 날이 내게 닥친 것이다.
나는 적이 사라지는 상실감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만들었던 적이 있던 '적'은 그대로 살아있다. 누군가로부터 '호적을 파야해, 제적을 해야 해'하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무난한 삶을 살았다.
몇 년 후, 퇴직하게 되면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적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무슨 일을 하십니까?
소속이 사라지면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건넬 수 있는 명함이 없어진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말이다.
나를 소개하는 '한 줄'은 내 삶의 모든 것을 담는다. 50대 중반을 넘겼으니 그동안 쌓인 영광과 상처는 얼마나 많겠는가? 다 필요 없다. 한 줄이면 된다.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다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선택 가능한 답, 몇 가지를 미리 만들어본다.
브런치 작가 땡땡땡입니다.
유튜버 채널 '책임전가' 운영자 땡땡땡입니다.
****의 저자 땡땡땡입니다.
독서방법론 특허를 가진 땡땡땡입니다.
기술경영학 박사이자 기술평가사 땡땡땡입니다.
페이스북에서 10만 명 회원을 가진 독서클럽* 운영자 땡땡땡입니다.
(*지금은 4만 1천 명)
아직 어떤 문장으로 나를 표현할지 결정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질문하는 일에 인색했다. 젊은 날의 나, 그때의 나는 적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의 밥벌이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상태'가 '존재'까지 설명하는 줄 알았다.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 하나의 적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은 성장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