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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Mar 23. 2023

적이 없어지는 날

내 삶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야


'적'에는 본적, 호적, 학적, 병적, 당적이 있다. 퇴직할 때가 되어가니 나는 다른 '적'이 떠오른다. 아! 내가 회사에 적을 두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적이 없어지는 날이 1,000일 하고도 며칠 더 남았다. 오늘의 밥벌이가 내일의 밥벌이로 이어지지 못할 날이 내게 닥친 것이다. 


나는 적이 사라지는 상실감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만들었던 적이 있던 '적'은 그대로 살아있다. 누군가로부터 '호적을 파야해, 제적을 해야 해'하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무난한 삶을 살았다.  


몇 년 후, 퇴직하게 되면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적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무슨 일을 하십니까?


소속이 사라지면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건넬 수 있는 명함이 없어진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말이다. 


나를 소개하는 '한 줄'은 내 삶의 모든 것을 담는다. 50대 중반을 넘겼으니 그동안 쌓인 영광과 상처는 얼마나 많겠는가? 다 필요 없다. 한 줄이면 된다.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없다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선택 가능한 답, 몇 가지를 미리 만들어본다.


브런치 작가 땡땡땡입니다. 

유튜버 채널 '책임전가' 운영자 땡땡땡입니다. 

****의 저자 땡땡땡입니다.

독서방법론 특허를 가진 땡땡땡입니다.

기술경영학 박사이자 기술평가사 땡땡땡입니다.

페이스북에서 10만 명 회원을 가진 독서클럽* 운영자 땡땡땡입니다.

    (*지금은 4만 1천 명)


아직 어떤 문장으로 나를 표현할지 결정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내 삶을 한 문장으로 말하는 것은 늘 시도했어야... 


나는 나에게 질문하는 일에 인색했다. 젊은 날의 나, 그때의 나는 적을 바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의 밥벌이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상태'가 '존재'까지 설명하는 줄 알았다.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 하나의 적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은 성장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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